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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千字文)’은 근대적 교육제도가 시작되기 전 중국의 대표적 교과서로, 우리나라에서도 초학자들의 한문 학습서로 쓰여졌다. 천자문은 1000가지 글자를 4자(字) 1구(句)로 묶어 250구로 만든 것으로 ‘천지현황(天地玄黃)’ ‘우주홍황(宇宙洪荒)’으로 시작된다.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어린이나 문맹자들에게 한자(漢字)를 가르치기 위해 교과서를 만들었는데 전한(前漢) 말기 사유(史游)가 만든 ‘급취편(急就篇)’이 최초의 교과서였다고 한다.
천자문은 급취편보다 나중에 나왔다. 하지만 글자가 1000자인데다 내용이 알기 쉽고, 최소한의 교양으로 알아 둘만한 고사성어(故事成語)가 많은 실용성 때문에 급취편을 밀어내고 부동의 교과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천자문을 처음으로 구상한 사람은 남조(南朝)시대의 양(梁)나라 무제(武帝)였다. 그는 아이들에게 문자를 가르치기 위해 왕희지(王羲之)의 글 가운데서 서로 다른 1000자를 모으게 하였다. 글자는 모두 달랐지만 문장으로 된 것은 아니였다. 무제는 1000 종류의 문자를 중복시키지 말고 문장으로 만들도록 주흥사(周興嗣)에게 명하였다. 주흥사는 왕명을 받자와 하루 밤 사이에 아름다운 250개의 문장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천자문이다. 대신 주흥사는 검은 머리카락이 밤새 백발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일화도 있다. 왕희지의 7세손인 승지영(僧智永)은 산사에 칩거하면서 천자문의 필사에 몰두했는데 마침내 해서(楷書)와 초서(草書)로 쓴 ‘진초천자문(眞草千字文)’800책을 만들어 각지의 절간에 나누어 줌으로써 한자 보급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동양 3국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중국·일본은 한자문화권의 나라다. 그런데 우리만 한자를 멀리하고 있다. 무턱댄 한자 배격의 공과는 미구에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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