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흥미로운 책 한권을 발견했다. 뒤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책은 최근의 독서계를 리드하는 모 방송의 책선정 프로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 개인적 기호로 선택했음으로 책을 ‘발견했다’는 나의 표현은 진실이다.
‘정재승의 과학콘서트’가 그것이다. 저자는 책의 제목에서 암시하는 대로 물리학도다. 물리학도 하면 왠지 글쓰는 일하고는 거리가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단지 그의 책을 읽기 전까지만 허용되는 편견일 뿐이다. 그는 여느 문학도보다도 훨씬 문학적인 문체를 구사한다.
‘문학을 알고, 영화에 심취했으며,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데다 세상에 대한 따뜻한 관심까지 가진 물리학도의 글은 과연 얼마나 대단할까.’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그의 글은 한마디로 완벽에 가까운 음악적 완성도를 자랑하는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와도 같은 것이었다.
저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세상이다. 그러나 그는 여느 사람들처럼 세상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 그치지 않는다. 세상을 파해쳐 그 속에 담긴 진귀한 보물을 모두 제 것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도굴꾼처럼 그는 이 세상의 복잡하기 짝이 없는 다양한 현상들을 헤집고 들어간다.
적어도 20년 전까지만 물리학자들은 세상의 다양한 현상 혹은 시스템을 몇 개의 요소로 단순화하는 데 익숙했다. 그러나 근래 물리학자들은 구성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복잡한 행동 패턴을 만들어내는 자연과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데 보다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복잡한 시스템을 다루는 과학적 패러다임’ 이른바 ‘카오스 이론’과 ‘복잡성’의 과학 분야로 발전한 것이다. 이후 물리학자들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행동 패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젊은 물리학자 정재승도 이 대열에 합류하여 복잡한 세상을 명쾌하게 헤집고 다닌다.
그가 알기 쉽게 풀어내는 복잡하고 희귀한 세상의 현상들 가운데서도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바로 ‘프랙탈’과 ‘카오스’에 대한 설명이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미국의 전설적인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의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에 투영된 카오스이론을 설명하고, 바하에서 비틀즈까지의 음악을 분석해서 프랙탈(Fractal) 패턴을 추출해 낸다. 백화점 설계에 숨은 자본주의 심리학과 파레토 법칙을 예리하게 파헤치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경제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복잡성의 경제학을 말하기도 하고, 증권회사에서 물리학자를 모셔 가는 이유를 설명하며 주가의 복잡성을 물리학적으로 이야기한다.
물리학의 최신 이론인 카오스이론을 배면에 깔며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회 현상을 하나의 콘서트로 재구성한 이 책에는 동시대 과학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문제와 주장에 일반인이 동참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깃들여 있다.
카오스 이론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서태지와 미국의 잭슨 폴록, 그리고 아프리카의 전통 문양이 프랙탈이라는 하나의 개념 안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 또한 인간의 사회적 활동과 그의 결과물인 다양한 현상들이 물리학의 연구대상이 되면서 과학과 세상은 그간 유리됐던 거리를 좁히려 하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미덕으로 삼고 있는 것은 현대 물리학의 주요 이슈들에 대한 저자의 친절한 해설이 아니다. 그보다는 정재승이라는 젊은 과학도의 세상에 대한 관심과 통찰,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잘 연마된 문장기술이 더욱 매력적이다.
저자처럼 자신만의 특정한 분야를 갖지 못한 데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구체적 노력으로 풀어내지 못했던 나 자신을 생각해 보면 부끄럽기만 하다. 시대의 기인 잭슨 폴락의 일관된 신념이 도저한 경지의 예술로 추앙받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신념 없이 갈지자 행보를 거듭해왔던 그간의 내 삶은 프랙탈의 공간 저 너머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