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성균관에서 수학하던 양반 자제들은 일정기간 공부를 한 뒤 졸업식을 통해 조정에 출사했다. 그때 고과에 합격한 유생(儒生)들에게는 왕이 직접 불러 제법 큰 잔에 술을 가득 부어 하사하곤 했다. 그러면 유생들은 그 술잔을 돌려 마시면서 군신(君臣)간의 결속과 동창(同窓)간 우의를 다지는 행사를 거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졸업식이 끝날 즈음 재학 중 입었던 푸른 제복을 찢는 파청금(破靑襟)이란 의식을 치렀다고 하는데 현재의 졸업식 후 교복 찢기는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밀가루 세례는 일제 강점기에 새로 도입된 일본식 교복에 대한 모종의 저항 심리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일본은 한국 학생에게도 군복과 비슷한 제복을 착용하게 하자 졸업과 동시에 독립에 대한 염원을 담아 교복에 하얀 밀가루를 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재학생대표, 졸업생대표가 번갈아 나와 송사와 답사를 하는 방식의 졸업식이 일반적이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라는 재학생들이 부르는 졸업식 노래 1절이 끝나면,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라고 부르는 졸업생들의 2절이 이어지고, 곧이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이라는 3절을 함께 합창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식순이 진행될수록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가 커졌던 1980~1990년대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고 감동도 적다. 하지만 졸업식이 끝나면 으레 교복을 찢고 밀가루를 뿌리고 얼굴에 구두약을 칠하는 뒤풀이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뒤풀이가 ‘졸업빵’이라 불리며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에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밧줄로 묶은 뒤 분말소화기를 뿌리고, 알몸으로 도심을 질주하고, 옷을 벗기고, 바다에 빠뜨리기도 한다. 집단 옷 벗기기는 남·여 학생 구분이 없을 정도로 유행이다. 심지어 이러한 내용을 찍어 소셜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한다. 비록 일부 학생들이지만 이 정도면 광란에 가깝다.
경찰청이 엊그제 폭력적인 졸업식 뒤풀이를 강력 단속하겠다고 발표했다. 오죽하면 경찰까지 나섰겠는가 하면서도 그들을 이 정도까지 일탈하게 만든 기성세대들의 책임은 없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