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통계를 먹고 산다’고 했다. 그 만큼 통계는 중요하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가 내놓는 통계의 정확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뒤따른다. 통계를 실제보다 부풀리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국민을 속인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는 ‘고무줄 통계’라는 말까지 있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통계(統計)란 용어는 1868년 경 일본이 만든 것으로 당초에는 ‘정표(政票)’, 또는 ‘표기(表記)’ ‘종합(綜合)’이라고 했다. 이후 통계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되고, 1881년에 통계원(統計院)이 설치되면서 ‘통계연감’ ‘통계연보’등의 간행물 발행과 함께 ‘통계’가 부동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고려시대부터 호구조사가 실시됐기 때문에 통계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으나 당시의 호구조사는 인두(人頭) 파악에 불과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통계 개념과는 거리가 있었다.
통계를 제일 먼저 도입한 나라는 프랑스로 1800년에 통계 관청을 설립했다. 그 다음이 1805년의 독일, 1837년의 영국, 1850년의 덴마크, 1861년의 이탈리아, 1871년의 항거리, 1881년의 일본, 1902년의 미합중국, 1919년의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순인데 동양에서는 단연 일본이 선두주자였다.
그런데 통계에 대해 누구보다도 필요성과 함께 애착을 가졌던 인물은 나폴레옹 1세다. 통계관청을 세계 최초로 설립한 나라가 프랑스인 것도 나폴레옹1세 탓이었다. 그는 생존에 이런 말을 했다. “통계는 사물의 예산이다. 사물의 예산이 없으면 영원한 행복은 있을 수 없다.” 또 황제 나폴레옹은 1813년 5월 22일자 정부 회장(回章)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폐하가 섭정하는 곳에, 폐하의 안전(眼前)에, 매년 제국의 부(富)는 물론 모든 농산물에 관한 통계를 바쳐야 한다.” 영웅 나폴레옹은 1821년에 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