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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총리 23년의 정치인

 

올해는 6·4 지방선거가 있는 해이다. 산간벽지의 군수에서 서울특별시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방정부의 일꾼들을 뽑게 된다. 저마다 당선의 꿈에 부풀어 있을 정치인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정치인이 있다. 총리를 23년 동안 역임한 정치인이다. 이 얘기를 꺼내면 누구나 아프리카의 어느 독재자 얘기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게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를 넘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가 잘 갖춰져 있으며, 정치는 투명하고 민주주의가 잘 발달해 있는 스웨덴의 얘기다.

타게 엘란데르(Tage Erlander)는 1946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되었고 1969년 총리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무려 23년간 스웨덴의 총리로 재임했다. 민주국가에서 23년간 총리로 재임하는 게 가능하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의원내각제에서는 다수당이 집권당이 되고 총리를 배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거에서 계속 승리한다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실제로 가능했다. 엘란데르는 사민당 소속으로 11번의 선거에서 11번 승리함으로써 23년 동안 총리의 자리에 계속 머물 수 있었다.

엘란데르 총리가 23년간 총리로서 계속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그가 스웨덴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많은 성과를 올렸고 정치를 잘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가장 먼저 포용과 통합의 정치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민당 소속의 엘란데르가 총리직에 올랐을 때 야당에서는 국유화와 소련식 계획경제를 우려했을 정도로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엘란데르는 이 같은 우려를 찬사로 바꿔놓았다. 재계의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어렵다고 보고 가장 먼저 재계를 설득하는 일에 나섰다. 목요일 만찬 때마다 재계와 노조의 대표들을 함께 초대하여 자연스럽게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스웨덴의 역사가들이 ‘목요클럽’이라고 이름 붙일 정도로 매주 목요일 만찬은 총리가 노조와 재계를 함께 만나는 날이 되었으며, 대화와 상생의 정치를 상징하게 되었다.

이 같은 노사정의 협력에 기반하여 스웨덴 경제는 놀라운 성장을 거듭했고, 복지국가의 기틀은 튼튼하게 구축되었다. 투명하고 신뢰받는 정치 하에서 국민들은 세금을 올리는 정부 정책에 적극 호응해 주었고, 복지와 삶의 질은 빠르게 향상되었다. 전 국민 의료보험, 4주 휴가제도, 전 국민 연금지급, 9년 무상교육, 100만호 주택건설 등이 그의 집권 기간에 이루어졌다. 유럽의 변방이었던 스웨덴은 유럽의 모범국가로 우뚝 올라서게 되었다.

엘란데르 총리의 또 하나의 업적은 정상에 있을 때 스스로 물러났다는 점이다. 집권 당시 이미 ‘국민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던 엘란데르는 1968년 선거에서 사민당의 단독 과반이라는 커다란 승리를 이끌어 냈다. 그 시점에서 그는 은퇴를 예고했다. 1년 후 젊은 정치인에게 총리직을 넘기고 물러나겠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해버린 것이다. 실제로 그는 1969년 ‘올로프 팔메’라는 당시 42세의 젊은 정치인에게 총리직을 넘겨주고 스스로 정계를 떠났다.

엘란데르 총리의 미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총리직 23년을 마친 엘란데르에게는 주택 한 채가 없었다. 임대주택에 들어가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를 사랑했던 국민들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난처해진 사민당에서는 부랴부랴 스톡홀름 외곽의 연수원 부지에 엘란데르 부부를 위한 주택을 지었다. 그의 사후 이 별장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으며, 미래의 정치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반드시 방문하는 성지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과 스웨덴의 정치 환경은 많이 다르다. 하지만, 엘란데르 총리가 45세의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되어 일기장에 남겼다는 다음과 같은 글귀는 피부색과 국가와 시대를 넘어 모든 정치인들이 곱씹어볼만할 가치가 있다. “너는 정치인으로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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