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정가를 뜨겁게 달구었던 기초지자체 공천 문제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철회 결정과 함께 원점으로 회귀하였다. 여당과 야당 공히 지난 대선 때 내걸었던 공약을 폐기하는 것을 지켜보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이가 없고, 허탈한 나머지 분노마저 인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후보의 정당공천 폐지는 1995년 지방자치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여 20년 운용하면서 나타난 문제를 개선하고자 하는 반성적 성찰에서 도출된 여야 모두의 공약이었다. 그간 중앙정치와는 사실상 무관한 지방자치가 소속정당의 진영논리를 판박이로 옮겨와 이전투구를 벌이는 정치 과잉현상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단체장과 기초의회의 다수당이 여야로 나뉜 경우 예산안은 물론이고 조례 개정 하나에도 지루한 정쟁을 일삼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정당별 정책의 차이가 없을 순 없지만, 그보다는 여야의 패거리 정치에 동조하고 앞장서지 않으면 지구당이나 국회의원의 눈 밖에 나서 다음번 선거에서 공천을 확보할 수 없다는 보신책이 그 배경임을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장치로서의 지방자치제도가 그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비용과 부작용을 초래한 배경에 이 공천제도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번 파장의 1차적 책임을 여당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은 공약 번복의 주요인으로 선택의 왜곡 문제를 들었다. 정당공천을 폐지할 경우, 후보 난립이 예상되고 지명도와 영향력을 갖춘 지역 기업인 등 토호세력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해져 지방경영의 능력자나 참신한 신인, 또는 소수자(여성 등)의 진출이 어려워진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민의를 반영하기 위해 철저한 상향식 후보 선출을 하겠다고 한다. 여론조사나 오픈 프라이머리 등의 방법을 지칭하는 듯한데, 이렇게 하면 기득권층 등 배제 대상 인물이 걸러질 수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피장파장인 말 꾸미기에 불과하다. 후보 선출이나 본선에서 선택될 인물의 범주가 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다.
더욱 문제시되는 것은 정당이 선택하는 인물이 최선일 수 있다는 그 예단적 판단의 오만함이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고 보면, 지금까지의 공천 행태에서 환골탈태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수많은 지자체의 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중앙당의 판단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보면 각 지구당에 공천권을 부여한다는 것인데, 이는 지금까지 해온 대로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의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해 주는 데 다름 아니다. 또 새누리당은 집권당으로서의 책임정치와 정당정치의 확립을 내세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보면 오히려 지방정치에서 정당의 굴레를 제거하는 것이 지자체가 소속 당의 감시나 눈치에서 해방되어 주민만을 보는 위민행정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이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무공천 공약을 철회한 과정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갑작스런 당 통합으로 불거진 불균형 룰 논란과 이로 인한 구성원들의 반발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쉽게 포기한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통합의 명분인 새 정치의 근간이 기초단체 무공천이 아니었던가? 현실의 불리를 감안하고라도 이를 관철했더라면 우리 정치사에 큰 획을 남기고, 설혹 이번 지방선거에서 패하더라도 그 이후의 정치과정에서 더 큰 보상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남는다. 우리의 정치사를 길게 보면 국민의 판단은 지금까지 용케도 균형을 잡아왔기 때문이다. 오십 보 양보하여 단체장은 차기로 미루더라도 기초의원은 무공천하는 절충안이라도 추진해 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초공천제는 그 자체의 순기능, 역기능 외에도 향후 지자체의 통폐합,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중대 선거구제 문제 등에도 맥이 닿아 있다. 하나의 사회현상, 정치제도를 바꾸는 데 너무 많은 논의와 시간이 걸려 안타깝다. 앞으로 또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지만, 이 무공천 과제를 덮지 말고 논의의 전면에 내세워 국민의 지혜를 모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