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한 초등학교 학부모들에게는 매년 초 다음과 같은 편지가 배달되고 있다. “저희 센터는 9·11 테러 피해자들을 위해 각종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병에 대한 전문의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비용 부담이 없습니다.” 발신자는 세계무역센터(WTC) 소속 환경보건센터다. 이 센터는 9·11로 인한 피해자들의 신체 및 정신 치료를 총괄하는 기관이다.
테러 발생 한 달 뒤, 뉴욕 맨해튼 거주 성인 중 10%가 우울증을, 8%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즉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심각성을 깨달은 뉴욕시 보건당국은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 구조·피해복구에 참여한 사람들, 사고 인근 주민을 A그룹으로, 심리·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일반 시민을 B그룹으로 나눠 치료에 들어갔다. A그룹은 기간 제한을 두지 않고 정신과 상담을 비롯한 심리치료를 받았고, B그룹은 최고 3천 달러 예산범위 안에서 심리치료를 받도록 했다. 이와 함께 필요하다면 약물치료와 집단치료를 병행했다. 치료에 쏟아 부은 예산은 연방정부만 3조원에 달한다.
지금도 치료를 원하는 사람은 뉴욕시 대표번호인 ‘311’에 전화를 하거나 뉴욕 내에 있는 세계무역센터 전용 치료 센터 3곳을 방문해 접수하면 되도록 간편하게 배려하고 있다. 테러 현장을 간접적으로 목격했던 사람도 그 사실만 증명할 수 있으면 프로그램에 등록할 수 있도록 대상도 확대했다.
미국은 이처럼 국립기관이 주도적으로 트라우마를 관리하고 사립기관·대학병원·협회 산하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기관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또한 연방 재난관리청이 재난과 대형사고 후 발생하는 트라우마의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직접 담당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9·11테러 후 미국의회가 마련한 ‘보상 특별법’ 덕분이다.
배워야 할 게 따로 없다. 안산에 트라우마센터를 설치키로 한 데 이어 단원고에 전문치료의사를 1년간 상주시키는 방안이 검토 중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로선 부족하다. 관련법 제정을 서두르는 등 그들을 치료하고 도우는 일이라면 더 많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