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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봄, 그리고 웃음 바이러스

 

꽃들이 만발한 오월이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계절이 온 것이다. 화려한 외출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아름다운 이 봄 속에 서있을 나를 상상하게 되고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선다. 주름이 잡혀오는 얼굴엔 나를 지켜온 굳은 근육들이 근심스런 모습으로 나를 향해 서 있다. 틀에 박힌 일상 속에서 과묵하게 변형된 얼굴을 보면서 가랑잎만 봐도 깔깔거리던 시절을 떠올린다.

부딪쳐오는 모든 것들이 왜 그렇게 재미있고 즐거웠던지. 매일 만나는 친구들 얼굴만 봐도 왜 함박웃음이 터져 나왔는지, 힘들고 어려운 시절, 양말 뒤꿈치가 터져 하얗게 살이 나온 걸 보면서도 왜 그렇게 우스웠던지, 종일 동무들과 놀다가 코 묻은 얼굴로 먼지투성이가 되어 대문을 들어서는 아이를 보면서 배를 쥐고 얼마나 웃었던지. 아이를 등에 업고 한 손엔 큰아이 손을 잡고 새참을 머리에 이고 논밭을 가며 아이들과 웃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빙그레 미소를 짓게 된다. 참으로 웃음이 흔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과 별반 달라진 것도 없는 지금, 크게 맘껏 웃어 본 날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언젠가의 일이다. 운전을 하다가 피곤이 몰려와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눈을 붙인 일이 있다.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뜨는 순간, 누군가 활짝 웃는 모습에 정신이 들어 눈을 크게 뜨니 창밖에 젊은 여인이 보였다. 차 안에 사람이 없는 줄 알고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고 이를 내놓고 활짝 웃고 있었다. ‘즐거워하고 웃는 얼굴이 가장 좋은 상이다.’ 송나라 관상가 마의의 말처럼 그 건물에 누군가를 만나러 가면서 크게 웃음을 웃어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을 위해 심호흡하고 있었을까? 기척을 내지 않고 그녀를 지켜보았다.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환하게 몇 번 웃음을 짓고 총총히 앞의 건물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씩씩했다.

잠깐 사이의 일이지만 그 웃음이 나에게도 전파되었는지 종일 마음이 훈훈하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돌고 있다는 걸 느꼈다. 집에 들어오니 남편은 “무슨 좋은 일이 있는가?” 묻는다. 아침에 잡다한 살림살이 때문에 서로 목소리 높였던 것도 잊은 채, “ 좋은 일이 있지요. 알지 못하는 여인의 웃음으로 내가 종일 웃었다는 거,” 그리고 낮에 있었던 일을 천연덕스럽게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나니 남편도 빙그레 웃고 있었다. 별스럽지 않은 웃음을 통해 아침에 높였던 언성 때문에 뜨막했던 사이가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면서 씻은 듯이 사라진다. ‘좋은 웃음은 집안의 햇빛이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복잡하고 바쁜 생활 속에서 짐짓 잃어버리기 쉬운 웃음이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오는 오월이다. 환하게 웃는 저 거대한 꽃들의 세상으로 나들이 가기 위해서라면, 나는 오늘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바르고 활짝 웃으며 얼굴의 굳은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고 밖으로 향해야 할 것 같다.



▲(사)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장 ▲저서: 시집 <연밭에 이는 바람>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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