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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세 여자의 외출

 

“할머니, 달콤한 거 좋아하시죠? 그러면 할머니는 캬라멜 마끼야또, 엄마랑 나는 아메리카노, 모카 프라푸치노 한 잔씩.”

“아이고 너무 진하데이. 요즘 아~들은 이런 커피 좋아하나? 커피가 와이래 많노.”

빠른 음악이 흐르는 카페. 처음이라 어색하다던 일흔 여섯의 어머니도 금방 익숙해진 것 같다. 세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지 쉬지 않고 웃고 떠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서 기림사 오름 길을 더듬어 온 터라 피곤하기도 할 텐데.

지금 나는 딸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는 중이다. 할머니와 엄마와 셋이서만 하는 여행. 시골에 혼자 계시는 건강이 약해지신 할머니를 위해 할머니 댁으로 찾아가 잔잔한 일상을 함께 해보는 것. 할머니와 카페에서 커피도 마셔보고, 할머니 갖고 싶은 물건 직접 같이 골라도 보고, 할머니 댁 오가는 긴 시간은 엄마와 둘이서만 보내는 보너스라며 여자들 셋이서 달콤한 추억 하나 만들어보자는 딸아이의 생각. 다른 가족들에게 양해를 얻어 이번 5월 연휴엔 그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던 것이다.

바람이 나뭇잎 어르는 소리 정겨웠던 기림사 오르는 길. 지팡이를 갖고 오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어머니를 부축하며 쉬엄쉬엄 올랐다. 마치 어머니 살아온 지난날들처럼 숨을 고르느라 앉았다 걸었다 하기를 몇 번이고 하며.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셔놓은 법당 대적광전은 선덕여왕 때 지었다는데 8차례나 다시 지었다고 했다. 맞배지붕이 단정한 다포식 단층 건물. 한때 화려했을 단청, 꽃 창살 그 바랜 색은 온화하기까지 하여 나이 든 어머니 품속처럼 푸근하게 다가왔다. 각자 마음을 담아 비로자나불전에 삼배를 올리고 돌아서 내려오는 길, 산 다람쥐 한 쌍이 제 집을 들락거리며 배웅을 해주니 한 폭 정겨운 그림으로 남았다.

카페를 나와 며칠 후 노인대학에서 간다는 봄 소풍에 입고 갈 할머니 예쁜 나들이 옷, 모자를 사러가는 시간. 생각보다 쉽게 옷과 모자를 고를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 후에야 집으로 돌아온 우리. 항아리에서 우려낸 모과차를 앞에 놓고 3대 세 여자는 밤늦은 줄 모르고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어머니는 외손녀 앞에서 자기 딸 자랑하느라 바쁘고, 나는 딸아이 앞에서 나 어릴 적 이야기 하느라 여념이 없고, 딸아이는 두 여자 이야기에 추임새 넣느라 바빴다. 문틈으로 깔깔깔 웃는 소리 오래도록 새어나왔다.

“엄마, 난 참 즐거웠어. 우리 다음에 또 그런 시간 갖자.”

“그래, 일찍 일어나 할머니 걱정하시던 텃밭 고추모종 다 심어드리고 온 것이 제일 잘 한 것 같다. 할머니도 많이 행복하셨을 거야.”

매년 어버이날이라고 시끌벅적 한꺼번에 찾아뵈어 어머니 정신 쏙 빼놓고 번개 불에 콩 구워먹듯 다녀온 그 길. 진작 알았어야 했다. 차분하게 앉아 어머니 말씀 조용히 들어드리는 시간, 손 한 번 꼭 잡아드리는 시간, 함께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돌아오는 길 2박3일 내내 잔잔하게 웃으시던 어머니 모습 떠나지 않았다. 딸아이는 다음에도 세 여자가 함께 하는, 카페에서 쉬어가며 맛집 찾아가보는 그런 소소한 여행 또 하고 싶단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할머니가 되겠기에 빙그레 웃고 있다. 고개 끄덕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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