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걱정되는 것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난방이고, 다른 하나는 화재(火災)다. 이제 막 겨울이 시작됐는데 곳곳에서 화재가 잇따르고 있다. 화재가 많아질수록 소방이 강화댔지만 화마를 당해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옛날 가옥은 목조이거나 초가였다. 불이 났다하면 재더미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늘 강조된 것이 불조심이었다. 군불이나 취사용으로 때는 솔가지나, 장작은 화약과 다름이 없었다. 또 전기가 없던 시절의 호롱불이나 촛불은 화재의 복병이었다.
시골의 초가집과 달리 도시의 기와집에는 ‘화방(火防)’이란 것이 있었다. 화방이란 방화벽이란 뜻으로 고려 때 장안에 불이났을 경우 연소(延燒)를 막기 위해 의무적으로 쌓게하였던 일종의 방화장치였다.
화방은 자연석이거나 네모나게 다듬은 사괴석(四塊石)을 벽체의 바깥쪽을 따라 쌓은 것으로 외 얼고 벽 친 안쪽에 비해 매우 견고했다.
지붕 밑에 도리까지 닿게 쌓은 것은 ‘온화방’이라하고, 중간 높이까지만 쌓은 것이 ‘반화방’이다. 온화방은 집과 집 사이에 설치해 옆집에서 발생한 불의 연소를 막았고, 길가 쪽으로는 창문을 내야했기 때문에 주로 반화방을 쌓았다. 반화방은 불막이 구실도 했지만 가옥의 미관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그의 저서 ‘고사통(故事通)’에서 “화방은 인명과 가재를 화마로부터 지키기위한 장치로서 도시계획상 이러한 착상은 세계에서 처음이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이제 화방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래된 산골마을이나 일부러 보존하고 있는 한옥촌에나 가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다. 화방을 발전시킨 것이 오늘날의 방화벽이지만 불안은 늘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