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지방선거가 끝났다. 여야 간에 ‘승자 없이 국민의 현명한 선택이 돋보이는 선거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이게 나라인가?’라며 탄식과 분노의 한숨소리가 가득했던 세월호 참사 정국 중에 치러진 선거임을 감안할 때, 민심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수도권 3곳 중 경기 인천을 새누리당이 가져갔으니 여당이 선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정당개입이 금지된 교육감선거는 진보 후보들이 압승했다. 진보교육감 후보들이 단일화에 성공했기에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구도’에서 유리했었고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고승덕 후보가 가정사 때문에 막판 추락으로 진보후보가 덕을 본 면도 있지만,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순응했다가 꽃다운 나이에 먼저 간 아이들에 대한 기성세대로서의 미안함을 가졌던 유권자들은 무상급식, 혁신학교 등 진보교육감이 일궈낸 성과와 실천력들을 떠올렸고 그것이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아야 한다.
진도참사 정국에서도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완승을 하지 못한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 달라는 읍소 때문이 아니라, 국민의 눈에 새정치연합은 믿음이 가지 않는 대안이라고 보였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강경파는 수도권에서 완승하지 못한 이유가, 안철수 대표가 광주에 올인 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익추구의 결과로 생긴 국가재난과 그것에 대한 정부의 무능한 대응을 생중계 보듯 목격한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던 시기에 치른 선거에서 무승부라는 성적표를 받아놓고도 정치 초년 당대표에게 책임을 돌리니 국민들 눈으로 보면 ‘저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고 자기 식구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들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돌아보면 안철수 대표 측은 구 민주당과 통합하기 직전까지 후진적인 정당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제3의 정치세력인 새정치연합을 창당하기 위한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현실정치에서 그 뜻을 구현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국민들이 기대하고 성원을 보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초선거 무공천’을 고리로 구 민주당의 김한길 대표 측과 통합수순에 들어갔지만 공천을 앞두게 되자 구 민주당 주류는 ‘기울어진 운동장게임’론을 주장하며 무공천은 자멸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거의 내란수준으로 안 대표 측을 압박했고 안철수 대표는 무공천을 철회해야했다.
한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새 정치의 총아였던 안철수가 펼치려던 기득권 내려놓기를 통한 정당혁신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물거품이 되었고, 그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예전만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안철수가 중요한 이유는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에 상응하는 결정권을 가진 제1야당의 당대표이기 때문이다.
합당 초기에 정치혁신의 청사진을 그려갈 임무를 부여받은 새정치비전위원회(위원장 백승헌)에서 제안한 첫 번째 정치혁신안은 ‘국회의 비례대표 의석 비중을 대폭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었다. 그것은 기초선거 무공천과 함께 정치권의 기득권적 구조를 혁파하는 양대 제도로 기초선거 무공천이 지역정치의 중앙 예속을 개선하는 것이라면 비례대표 대폭상향조정은 독일식정당명부제에 가까운 것으로 현행 선거제도가 1등만 살아남는 ‘승자독식’ 제도로 특정 지역에서 우위에 있는 정당이 전체 지역민의 지지도보다 절대적으로 많은 의석을 가져감으로써 지역주의가 고착화되는 폐단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이다. 안철수 대표는 제1야당 대표의 권한을 이번 보선에 나설 후보를 선정하는 공천기준에 적용하여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지역구도를 타파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당선가능성이나 인지도보다 국회의원선거제도의 혁신을 실행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후보가 공천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정치 불신을 해소하고 안철수가 새 정치의 상징으로 국민 앞에 돌아와 야권의 리더십을 바로 세워 국민들이 진보진영에 정권을 맡겨도 좋겠다고 국민적 신뢰를 받을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