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살난 중학교 3학년 학생의 뒷모습은 의젓해 보였다. 워낙 덩치가 커서인지 중후감 마져 느껴졌다. 어깨에 걸친 책가방과 단정해 보이는 교복, 어느 모로보나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집에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소년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는 말못할 비애와 사회를 향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가 다름아닌 어머니 시신과 함께 180일 동안 살았다는 송모군이다. 사건이 알려지자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세상에 그럴 수가”라고 입을 모았다. 혹자는 송군의 ‘효심’이 몰고온 불행이라 하고, 혹자는 가난한 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비정한 사회’ 탓이라고 했다. 아마도 후자의 견해가 맞을 것 같다.
지음 우리사회는 빈부 양극화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가진 자는 선이고, 못가진 자는 악이다. 가진 자는 오만하고, 못 가진 자는 몸둘 곳이 없다. 말로는 더불어 사는 사회지만 현실은 차별의 사회다. 살만한 세상이라고들 말하지만 죽지못해 사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방문을 열면 바로 옆에 이웃이 있고, 집밖으로 나가면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공동체 사회가 있지만 가지지 못한 자와 고독한 자가 기대서 위안 받을 만한 곳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모두가 자기 밖에 모르고, 자신의 일이 아니면 남의 일이다.
송군에게도 가까이 지내는 친구와 선생님 그리고 하나뿐인 이모가 있었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아마도 구차한 일을 입밖에 내고 싶지 않았거나, 어머니의 추한 몰골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혼자서 해결하기에는 세상물정에 너무 어두웠다.
세상의 무관심이 낳은 비극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말했다. “세랑하는 것이 제일 좋고, 미워하는 것이 다음이요, 무관심이 제일 나쁘다.”
송군아, 힘내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