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심리학자 앤드류 바움(Andrew Baum)은 미국 뉴욕의 스토니부룩 대학교에서 두 가지 유형의 기숙사 학생들을 비교 분석해 보았다. 한 기숙사는 긴 복도 양쪽으로 방이 있고 공동 화장실과 휴게실이 양쪽 끝에 있는 소위 ‘복도식’ 아파트와 비슷한 유형이었다. 다른 기숙사는 방 2개에 화장실과 휴게실이 붙어 있는 구조로서 소위 ‘계단식’ 아파트와 비슷한 유형이었다. ‘복도식’ 기숙사 학생들은 여러 개의 방이 붙어 있어서 더 사교적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오히려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입주자들끼리 서로 돕는 경우도 드물었다고 한다. 긴 복도에서 누굴 얼마나 자주 마주칠지 통제할 수 없었고,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사이에 완충지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계단식’ 기숙사 학생들은 서로 얼굴을 보고 얘기하며, 서로 돕고 서로 친해지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즉, 외부의 자극에 노출되는 시기와 빈도를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더 사교적이었다는 것이다.
가수 겸 작곡가 송창식은 낮에는 자고 밤에 일어나서 작곡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생활한복이 잘 어울렸으며, ‘가나다라마바사자차카타파하’ 같은 엉뚱한 소재를 이용해서 멋진 유행가를 만들어 내는 그의 창의성은 남들이 잠자고 있는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솟아난다고 한다. 내가 아는 화가는 세계 주요 도시의 다리를 점묘화 기법으로 그려서 유명해졌다. 새벽 6시까지 작업을 하고, 남들이 출근하는 아침 시간에 잠을 자기 시작한다.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하는 이런 예술가들은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는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발견하고 유지함으로써 독창적인 작품들을 계속 생산해내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낮에 충분한 잠과 휴식을 취하고,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움직이기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고 작품을 홍보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자기만의 시간과 사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작가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어느 자치단체에서는 작가들을 위한 창작공간을 저렴한 비용으로 빌려주기도 한다. ‘치타 델레’를 인터넷 검색창에 입력해 보면, ‘요새 안의 독립된 작은 보루, 내성(內城)’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치타 델레’라는 단어는 몽테뉴 때문에 유명해졌다. 몽테뉴가 명작 <수상록>(Essais)을 저술한 장소가 바로 저택 안에 있던 3층짜리 원형 탑이라고 알려지면서부터 ‘치타 델레’도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몽테뉴는 엄청난 부자였던 할아버지와 보르도 시청의 고위직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21세라는 젊은 나이에 보르도 지역의 판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법관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부친의 사망을 계기로 15년 동안의 판사 생활을 미련 없이 접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몽테뉴는 저택 안에 있던 3층 원형탑 ‘치타 델레’에 머물면서 독서하고 글 쓰는 것을 즐겼다. 많은 책을 읽었고, 읽은 것에 주석을 달았고, 사소한 일상의 사건들에 관한 견해를 종이에 적어 두었다. 이렇게 그날그날,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진 책이 바로 <수상록> 초판이다. 이후 보르도 시장에 선출되어 공직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페스트의 창궐로 다시 시골에 칩거하면서 <수상록> 증보판을 냈다. 이처럼 몽테뉴가 공직에서 벗어나 잠시 쉬면서 쓴 책이 바로 몽테뉴의 <수상록>이다.
학생이나 예술가뿐만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들에게도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은 매우 중요하다. 직장과 가정에서 바삐 생활하다 보면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 버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자신만의 ‘치타 델레’로 잠시 피신해 보자. 그러고 나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 보자. 굳이 별장이나 콘도처럼 근사한 장소가 아니어도 좋다. 동안거나 하안거처럼 길지 않아도 좋다. 천주교의 ‘피정’이나 불교의 ‘템플 스테이’에 짧게 참가해도 좋다. 직장이나 집 주변의 길을 마냥 산책해도 좋다. 이렇게 자기만의 ‘치타 델레’를 만들어 놓고, 재충전할 수 있다면 하루하루가 훨씬 더 행복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