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종종걸음을 치는데 신발 속에서 이상한 느낌이 전해진다. 처음엔 별로 거슬리지 않았으나 차츰 더 신경이 쓰이게 한다. 하는 수 없이 신발을 벗고 보니 가운데 발가락이 콩나물 대가리처럼 보인다. 빨아 놓은 양말을 꺼내 들고 발을 들이밀고 당기려는 순간 예의 콩나물 대가리가 쏙 빠져나온다.
다시 서랍을 열고 보니 구멍 난 양말을 따로 묶어 놓은 뭉치가 보인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난히 긴 가운데 발가락이 자주 하는 일이 양말에 구멍을 내는 일이다. 그 바람에 나는 구멍 난 양말이 그냥 버리기 아까워 한 번씩 꿰매서 신는다. 혹 누가 보기라도 할라치면 요즘 세상에 양말 깁는 사람도 있느냐고 핀잔이다. 그러면 사람도 손이나 발 조금 다치면 치료해서 살게 하지 말고 그냥 죽여야 한다고 웃으며 대꾸하기도 한다. 기왕 손에 댄 김에 구멍 난 양말 뭉치를 다 꿰매기로 했다.
양말을 꿰매는 일이 지금은 놀림감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옷을 손질하는 일은 물론 형제가 물려 입는 일이 다반사였다. 무엇이나 함께 나누고 조심스레 다루고 아꼈다. 영어사전도 한 권으로 형제가 돌려가며 사용하기도 했고 미술도구도 언니나 동생 교실로 건네지며 쓰는 일도 흉이 아니었다. 대부분 가정에 한 대뿐인 TV는 안방극장으로 가족들을 한 데 모이게 했다.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동네 사람들이 일손을 보태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결핍이 주는 불편을 정으로 메우며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가깝게 살았다. 여남은 살 아이들이 빠진 앞니처럼 지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세상이 변했다. 부족할 게 없이 풍족한 세상에서 넘쳐나는 물질이 우리에게 상처를 낸다. 다른 사람들만큼 소유해야 하고 보여줘야 하고 남들 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하기 위해 바쁘게 앞만 보고 사느라 곁에 누가 있는지 모른다. 이웃에서 누가 죽어 가는지도 모른다. 새로 이사 온 이웃이 떡을 돌려도 반기는 사람도 없다. 집에 주부가 없어도 문만 열고 나가면 한 집 건너 음식점이고 편의점에도 간편식이 줄지어 있다. 그도 귀찮으면 전화만 하면 먹고 싶은 음식이 득달같이 눈앞으로 차려진다.
밖에 나갔다 집에 들어서면서 엄마를 부르던 시절도 가고 지금은 각자 알아서 챙겨먹고 컴퓨터와 마주 앉는다. 그것도 틈틈이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하루는 구태여 바쁜 엄마를 애타게 찾지 않아도 된다. 아빠의 구두를 닦지 않아도 용돈은 주어진다. 자녀들이 성장하면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는 일도 미리 약속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다. 우리는 고도성장 사회에 살고 있어 가장은 보기 힘들고 안의 해는 어엿한 직장여성이 되었다. 촌스럽게 양말 꿰매는 순간에도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서 일어선다. 왜 아직도 시골에서 담그는 김장김치에 그렇게 눈독을 들이는지….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