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에서 싹튼 미군 파일럿과 베트남 여인의 사랑을 그린 뮤지컬 ‘미스 사이공’. 전쟁 속에서 만난 미군과 사랑에 빠졌고, 그 남자의 아들을 홀로 낳아 키우며 남편이 미국으로 데려가기만을 꿈꿨던 여인. 혼혈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만이라도 풍요로운 땅 미국으로 보내기 위해 죽음을 택한 여인의 슬픈 사연이 줄거리다. 지극히 오리엔탈리즘적 작품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1989년 9월 초연된 이후 25년 동안 롱런하며 세계 4대 뮤지컬 반열에 올라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인도 수많은 현지 여인들과 사랑이 있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라이 따이한’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선 1996년 이들을 소재로 한 ‘블루사이공’이라는 뮤지컬이 만들어져 백상예술대상을 받기도 했다. 1992년 양국의 수교 이후 베트남 여인과 한국 남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신(新)라이따이한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 이들이 얼마나 있는지 정확한 수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1천500명 정도로 추산하는 반면, 현지 사람들은 1만명 이상 존재한다고 추정한다. 이들은 편모 가정에서 극심한 가난과 사회적 냉대 속에 자라고 있어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또 친부를 찾아 한국으로 나섰지만 성공한 사례는 극소수다.
최근엔 필리핀에 거주하는 코피노(Kopino) 문제도 심각하다. 코피노는 한국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를 말한다. 이들은 어학연수나 해외 출장, 여행 등으로 체류하는 한국 남성과 현지 여성의 동거나 성매매 등을 통하여 태어난다. 비뚤어진 한국 남성들의 성문화, 낙태를 죄악시하는 필리핀 분위기에 따라 그 수도 눈에 띄게 증가해 1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양육비 한 푼 받지 못하는 등 아버지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아 가난과 멸시에 시달리며 살아오고 있다. 때문에 친부를 찾아 나서는 코피노들도 늘고 있다. 그리고 방법도 매우 적극적이다.
엊그제 한국 법원에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한 코피노가 승소, 친부의 호적에 오르게 됐다고 한다. 시민단체 등에서 코피노의 친부를 찾아준 적은 더러 있지만 이 같은 사례는 처음이다. 책임지지 못할 일을 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심란하겠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