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로 성공한 약 중 상당수는 당초 치료 목적과 상관없이 우연히 나타난 효과의 산물이었다. 발기부전 치료제로 널리 알려진 ‘비아그라’도 당초엔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된 것이었다. 1990년대 초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된 실데나필은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연구진은 시험 중 실데나필을 복용한 남성에게서 발기현상이 나타난 것에 주목했다. 그리고 개발 방향을 급선회, 8년 만에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를 탄생시켰다.
미용성형과 주름 개선 등에 널리 사용되는 ‘보톡스’도 처음에는 근육 경련 치료제로 개발된 것이다. 특히 안과에서 눈 주변 근육을 마비시켜 사시를 교정하는 약물로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치료 도중 우연히 눈가 주름이 펴지는 효과가 발견돼 주름개선제로 거듭났다.
미국 모 제약사가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로 출시한 ‘프로스카’는 남성 모발이 증가하는 부작용을 유발해 전문 탈모치료제 개발로 연결됐고, 당초 고혈압 치료제로 출시된 ‘미녹시딜’도 두피에 바를 경우 사용 부위의 혈류량이 증가해 발모를 촉진시킨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탈모치료제로 변신했다.
하지만 개발 목적에 비해 다양한 치료에 쓰이며 뛰어난 효과를 나타내는 약이라면 ‘아스피린’이 단연 으뜸이다. ‘아스피린’의 성분은 잘 알다시피 로마인들이 해열제로 사용했었다는 버드나무껍질의 추출물 살리실산이다. 그러나 살리실산은 의학적인 효과가 있었지만 위벽을 자극하며 설사를 일으키고, 많이 먹을 경우 죽는 사례도 있었다. 독일 바이엘사는 이 같은 부작용을 없애는 세계 최초의 합성 의약품 제조에 성공, 1899년 ‘아스피린’을 출시했고 진통제의 대명사가 됐다. 그 후 ‘아스피린’은 뇌졸중과 심근경색을 예방하거나 혈전을 용해시키는 효과 등이 속속 규명됐다. 그리고 일반인 사이에선 ‘장수를 부르는 약’으로 자리매김하며 인간이 만든 3대 명약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최근 이런 ‘아스피린’을 장기 복용할 경우 췌장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와, 나이 많은 대장암 환자가 매일 적은 용량의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사망률이 줄어든다는 조사가 나왔다고 한다. 진통제인 아스피린, 얼마나 숨겨진 효과가 더 있는 것일까.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