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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제비는 약속으로 비행한다

 

며칠 전 출근하는 길에서 제비를 보았다. 필자가 사는 평택에서 아주 오랜만에 보는 여름철새 제비. 반갑기그지없다. 제비 두 쌍이 골목길 어귀를 날렵하게 비상한다. 집을 건축하려는지 단독주택 슬래브 지붕 아래 돌출된 처마 밑을 탐색비행하고 있다. 눈앞에서 물 찬 제비처럼 날렵하게 검은 새가 날아가기에 제비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바라보았다.

이 골목길에서 참새들만 보아 와서 그런지 까만 새가 날렵하게 나는 모습을 보니 여간 반갑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물찬 제비였다. 언젠부터인가 제비가 사라졌는데 다시 나타났다. 만물은 유전한다더니 꽤 오랜 시간을 지난 후 계절과 풍경은 변함이 없는데 기억속의 계절과 풍경은 제비 날개 밑에 묻어있었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었지만 발길은 저절로 멈춰버렸다. 그리고 기억 저편 아늑한 곳에서 과거의 그림들이 재생되어 있었다. 제비들을 보니 아련한 옛날이 내 생각의 뇌 회로를 비집고 이런저런 상념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브레인스토밍처럼 옛날의 풍경들이 눈의 망막 스크린 사이로 점멸되었다.

먼저 떠오른 것이 맥추절기인 보리수확 철. 보리타작을 한창 하고 있을 때 그 누런 보리밭 위, 혹은 타작하는 마당 곁을 유유히 물 찬 제비가 선회하였다. 타작마당에 이리저리 날고 있는 곤충들을 제비는 열심히 낚아채어가고 있었다. 참 제비는 익조(益鳥)임에 분명하다.

더구나 강남에 대한 꿈과 낭만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단순히 우리주변을 맴도는 텃새와는 달리 수천km 떨어진 곳에서 기나긴 푸른 바다를 단숨에 날아와 고향언저리에 머문다. 귀소본능에 충실한 제비. 의리를 지키는 저 미물들의 약속.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의리는 간 곳 없이 자신의 입맛에 따라 달면 삼키고 쓰면 언제든지 내뱉는 등 감탄고토(甘呑苦吐)한다. 이렇듯 현대인들은 참 쉽게 산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고 약속을 어겼다고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고민은 바삐 살아야 할 현대인들에겐 사치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된다. 약속을 지켰든 어겼든 간에 이익이 도출되거나 배당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스피디한 세상에 그런 고민과 싸움은 사치스럽기 때문이다. 실은 알고 보면 치사스럽기 그지없는 황금에 푹 빠져버린 그야말로 ‘거지’ 아니면 ‘노예’ 근성이다.

새 중에 제비가 상당히 빠르기로 소문나 있다. 스피디한 세상에 제비처럼 치고 날아야 한다. 그런데 제비는 어떤가? 인간이 파괴시켜 버린 환경이 아니라면 언제든 제 고향으로 돌아오는 귀소본능에 신실한 약속까지 잘 지키고 있잖은가? 현대 스피디한 세상에서도 제비는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수행한다. 그것도 아주 날렵하게 재빨리 질서를 추구하고 또한 순응하는 등 기동성이 놀랍다. 어떠한 상황이더라도 응용력이 살아나 상황에 적응하니 아무런 문제없다. 약진과 도약의 나래를 펼치는 제비.

익조(益鳥)인 제비를 만난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다. 견고한 무게를 지고 가라는 현대에서 물 찬 제비처럼 활공하고 비상하는 새. 속도가 빠른 스피디한 세상에 참다운 새는 뭐니 뭐니 해도 제비다. 제비는 귀소본능에 신실한 약속이다.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는 세상에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는 신실한 약속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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