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얘기를 할 때 곧잘 아인슈타인 일화를 예로 든다. 천재 물리학자였지만 건망증이 심했던 까닭이다. 어느 날 아인슈타인이 기차 여행을 떠났다. 얼마 뒤 역무원이 차표를 검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차표를 찾을 수 없어서 진땀을 흘리며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방을 뒤졌다. 그때 역무원이 아인슈타인을 알아보고 차표는 안 보여줘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계속 차표를 찾았다. 역무원이 차표는 안 보여줘도 된다고 재차 말하자 아인슈타인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차표를 찾아야 내가 어디 가는지 알 수 있단 말이오!” 건망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얘기지만 결코 유쾌하지 않은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건망증을 치매의 예비신호로 보기 때문이다.
치매라는 말은 라틴어로 ‘정신이 없어진 것’을 뜻한다. 한자로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 )’자를 쓴다. 치매는 뇌 속 1천억개 신경세포가 천천히 죽어가며 생기는 병이다. 종류도 혈관성 치매, 알코올중독성 치매, 파킨슨병성 치매, 알츠하이머병 등이 있다. 치매는 조기진단이 특히 중요하다. 초기에 투약을 시작하면 진행 속도를 상당기간 늦출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조기 발견이란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건망증으로 치부하거나 나이 탓 하며 넘기기 일쑤다. 하지만 심각한 기억장애와 이상 행동을 할 때쯤이면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태반이다.
그중 알츠하이머병은 제일 고약하다. 건망증처럼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서서히 발병, 진행되는 게 특징이지만 치료나 예방은 속수무책이다. 병세도 무섭다. 기억력만 잃는 게 아니라 식사, 용변, 옷 입기 등 일상생활 능력도 떨어져 수발이 필요하다. 망상, 환각, 불안, 흥분, 불면 등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한다. 치매의 50∼60%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치매환자는 지난해 58만명이었고, 이중 30만명 정도가 알츠하이머 환자다. 2025년엔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알츠하이머병의 기억을 지우는 물질을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찾아내 규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머릿속 지우개’의 정체가 밝혀짐에 따라 기억력 상실이나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신약 개발도 가능해졌다고 한다. 모두의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