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일상생활은 끝없는 계약의 연속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계약은 특별한 요식행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 대한 중요한 예외 하나가 바로 혼인계약이다. 신분법상 계약으로서 혼인이 법률상 유효하게 성립하려면 당사자 사이에 혼인을 하려는 의사의 합치 외에 혼인신고가 반드시 필요하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이상 법률혼으로서 보호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부부공동생활의 실체가 있으면서 단지 혼인신고만 하지 않은 경우에는 아무런 법률적인 효력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이것이 바로 사실혼 보호의 문제로서, 이러한 사실혼은 결혼식을 치르고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혼인신고를 미루고 있는 경우나, 노년에 새로이 배우자를 맞이하면서 자녀와의 관계나 주위의 이목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에 흔히 볼 수 있다.
법률혼 배우자와 사실혼 배우자 사이에 가장 큰 차이점은 사실혼 배우자에게는 상속권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실혼 중에 부부공동의 노력으로 형성한 재산에 대하여는 사실혼 해소 시에 재산분할청구를 할 수 있다. 다만, 이는 배우자 생전에 하여야 하는 것으로, 배우자가 사망한 후에는 상속권도 없고 재산분할청구도 할 수 없다.
따라서 만약 상대방 배우자가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에는 서둘러서 사실혼의 해소를 선언하고 생전에 재산분할청구를 할 필요가 있다. 간병에만 신경을 쓰다가 때를 놓치면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룩한 재산에 대하여도 아무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억울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혼 배우자도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법상의 유족연금 수급권자가 될 수 있고, 자동차종합보험의 부부운전자한정운전 특별약관도 적용받을 수 있다.
사실혼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혼절차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없다. 어느 일방이라도 자유로이 이를 종료시킬 수 있다. 다만, 사실혼 부부도 서로 동거하고, 부양하며, 협조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사실혼 배우자의 일방이 정당한 이유 없이 서로 동거, 부양, 협조하여야 할 부부로서의 의무를 포기한 경우 그 배우자는 악의의 유기에 의하여 사실혼관계를 부당하게 파기한 것이 되어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된다.
한편, 사실혼은 객관적으로도 사회 관념상 가족질서적인 면에서 부부공동생활을 인정할 만한 혼인생활의 실체가 있는 경우라야 하고, 법률상 혼인을 한 부부가 별거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 다른 한쪽이 제3자와 혼인의 의사로 실질적인 부부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이는 사실혼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재산분할청구나 유족연금수급권도 인정되지 않고, 부부운전자한정운전 특별약관도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법률혼이 사실상 이혼상태에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사실혼관계 존부에 대하여 다툼이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방이 생존 중에는 그를 상대로 사실혼관계존부확인청구를 할 수 있고, 상대방이 사망한 경우에는 그 사망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에 검사를 상대로 사실혼관계존부확인청구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