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이집트를 여행한 적이 있다. 카이로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데 도로 인근에 지붕 없는 집들이 대부분이라서 그 이유를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주택이 완성되면 취득세를 내야하는데 지붕 없이 미완성 건물에 살면 세금을 안 내도 되기 때문에 완공을 미루고 우선 들어가 산다고 답했다. 2층 건물의 경우 지붕이 없어도 1층에 살면 비가 거의 안 오는 이집트에서는 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고 한다.
세금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사례는 역사 속에서도 흔하게 찾을 수 있다. 러시아의 표트르대제는 1712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기면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일환으로 귀족들의 긴 수염을 깎도록 했다. 귀족들이 하느님 주신 수염을 깎으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발하자, 표트르대제는 수염을 기르도록 하는 대신 수염세를 물리도록 했다. 그러자 너도나도 소중하게 가꿔온 수염을 깎아 버리기 시작했다. 의외로 빠르게 세금부과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왕이 된 윌리엄3세는 반란을 진압하느라 돈이 많이 필요하자 호화주택에 세금을 부과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처음에는 벽난로가 있느냐 없느냐로 호화주택 여부를 따졌으나 나중에는 창문수를 기준으로 과세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앞 다퉈 창문을 없앴고, 집을 지을 때 아예 창문을 내지 않게 됐다.
현재 네덜란드의 건물은 대부분 폭이 좁고 창문도 좁아 동화 속 건물 마냥 아기자기한데, 이는 과거 커튼 길이에 따라 세금을 걷는 커튼세, 계단 층수에 따라 세금을 걷는 계단세, 건물 폭에 따라 세금을 걷는 건물세 등 각종 기이한 세금이 많은 데서 기인한다.
정부는 조세제도를 통해 재정을 조달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생활 방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세제도를 바꿀 때는 의도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납세자들은 과세에 대해 피동적 태도를 보이지만 않고, 세금부담을 피하거나 낮추기 위해 여러 가지 창의적 방법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우리정부는 술·담배 소비를 억제하고,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관련세금 인상을 검토 중이다. 부정적 외부효과를 일으키는 소비를 줄이기 위함이지만, 영국의 담배 고세율 정책이 평균 흡연율을 낮추는 데는 기여했으나, 담배 밀수 및 청소년 흡연 증가라는 역효과를 가져 왔다는 점도 함께 살펴야 할 것이다.
재정적자를 메우고, 늘어나는 재정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세율을 인상하거나, 새로운 세금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세금 올리면 세수가 늘어나리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부유층이나 기업이 세율 낮은 국가로 이주하거나 국적을 바꾸는 세금 망명 러시가 나타난다면 의도와는 달리 세수가 줄어들 수 있다. 실제 우리나라 대표적 대기업들은 국내보다 해외 생산 공장을 확충하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기업여건의 악화는 공장 탈출 현상을 가속화시켜 국내 일자리도 줄이고 세수도 줄 수 있다.
싱가포르가 법인세를 낮추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글로벌 기업 유치에 성공하고 있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싱가포르는 최근 10년간 경쟁력 있는 외국기업 유치를 통해 동아시아의 금융·오일·바이오·워터 허브로 빠르게 도약하고 있으며, 세계 경영 대가들도 싱가포르를 혁신과 발전의 성공모델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