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본보(7월21자)를 통하여 제기한 기본소득에 대한 반응이 심심치 않게 제시되고 있어 이를 다시 한 번 논하고자 한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생계유지에 필요한 소득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제에 대하여 우리 사회의 심각한 경제·사회적 질병을 치유하는 대책으로 공감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넉넉잖은 곳간(재정)을 고려할 때 이는 시기상조의 퍼주기라고 반론을 펴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나아가 그러잖아도 근로를 멀리하고 편한 삶만 추구하는 현 세태를 조장하고 답보상태에 있는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우려를 표시한다.
이런 우려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앞으로 어떠한 사회를 지향하고 만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가치의 선택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의 소득불평등과 이로 인한 하위 소득계층의 최고 빈곤율, 자살률 1위 국가의 오명, 특히 심각한 노인 빈곤과 자살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우리사회의 치부가 아닐 수 없다. 이에 관한 객관적 통계자료는 앞선 칼럼들을 통해 제시한 바 있어 생략하고 최근의 자료 하나를 소개한다.
지난 1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국민의 복지인식 조사결과를 보면, 2012년 말 일반국민 천 명을 대상으로 사회경제적 지위의 안정성을 전화로 설문조사한 결과 조사대상자의 60%가 장래가 불안정하다고 답했다 한다. 불안정의 원인은 ‘불충분한 소득’(33%)에 이어 ‘실직 등 직업의 불안정성’(24%), ‘사회에 대한 불신’(23%), ‘정부의 지원 부족’(11%), ‘건강 문제’(9%) 순이었다. 국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사회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통계에 의하면 2인 이상 도시근로가구의 소득은 지난 5년 동안(2008~2012년) 약 16% 늘었지만, 해마다 가계지출은 더 높은 비율로 증가하여 적자가구의 비중이 증가한 결과 2012년 현재 우리나라 가구의 58.5%가 주택 마련 등을 위해 평균 6천147만원의 금융부채를 지고 있다고 한다.
정치·사회 시스템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 시장경제(자본주의)는 자본의 불평등 축적과 소득의 양극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정치의 과잉 개입은 시장의 흐름을 오도하여 경제를 망칠 수도 있어 경계해야 마땅하지만, 적어도 그 근간이 되는 기본 틀, 예를 들면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상(진정한 의미의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국민의 부담 수준, 복지의 기대치 등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한 정치적 통제가 가해져야 한다.
순 경제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세계적 화두인 성장을 정체시키는 최대요인으로 유효수요(내수)의 부족을 꼽는다. ‘잃어버린 20년’으로 지칭되는 일본이 대표적이다. 소비 진작을 위하여 아무리 정부가 돈을 풀고 금리를 내려도 풀린 돈은 장롱(저축)으로 들어가 소비-투자의 확대 선순환이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의 경우 과대해진 대외의존율(수출)을 고려하면 내수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내수부족을 타개하여 성장률을 높이는 유효한 방안이 기본소득제 등을 통한 하위계층으로의 소득이전이다. 살아가기에 급급한 하위층일수록 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제의 방법론으로는 지난 7월부터 시행된 노령연금이 단초를 연 만큼 하위층부터 시작해 범위와 지원액을 지속적으로 넓혀가야 할 것이다. 지금 정부가 하는 방식, 즉 국민의 부담은 동결시키고 기존의 재정에서 자투리를 긁어모아 충당하는 방식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미봉책에 불과하다. 보다 근본적으로 국민의 부담 증가를 통해 소요재원을 확보하여 실질적인 생계 지원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증세와 포퓰리즘 논란을 극복하기란 평상시의 논의로는 불가능한 난제이다. 생각키로는 차기 정권 담당을 목표로 하는 정치세력(정당)이 증세를 포함한 청사진을 지금부터 준비하여 제시함으로써 국민의 심판을 받는 방법이 그래도 가능한 대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3년 여 남은 다음 대선에서 기본소득제가 선거의 핵심 이슈로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