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5일 광복절은 일제의 억압에서 고통 받던 우리 민족에겐 역사적인 날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슬픈 역사를 항상 되새길 수밖에 없는 날이다. 또한 위안부 문제, 독도문제, 동북아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게 하는 작금의 행태를 끊임없이 일삼는 일본을 이웃으로 둔 현실 때문에 가슴 아픈 날이다.
최근 개봉해 연일 흥행 신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에 이끌려 극장을 찾은 수많은 관객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찾을 길 없는 리더십에 대한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사람들이다. 1천500만 명이면 우리나라 인구의 1/3에는 못 미치는 수치지만 15세 이하 관람제한을 고려한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관람한 것이다.
그런데 국산영화가 1천억 원의 매출을 가뿐하게 넘어섰다는데 왜 기쁘지만은 않은 것일까! 이순신이라는 거대한 인물에게 받았던 위로가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희미해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공자 말씀에 ‘어둡다고 불평하는 것보다 작은 촛불을 하나라도 켜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슬프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화난다고 아무 때나 소리 지르고 분노를 발산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슬픈 8월’, 쓸쓸한 마음을 데우기 위해 우리는 촛불 하나를 밝혔다. 우리 화성 시민들의 한푼 두푼 정성을 모아 큰마음으로 동탄 센트럴파크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것이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두 손 꼭 움켜쥐고 반듯하게 앉아 수요 집회에 나온 위안부 할머니를 바라보는 그 ‘소녀상’을 우리 화성시는 시민의 성금으로 설치했다. 소녀상 옆에는 ‘다시는 이 땅에 전쟁과 폭력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이 말살되는 범죄행위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화성시민들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라고 쓴 표지석이 놓여있다.
동탄 센트럴파크 한복판 ‘평화의 소녀상’이 단순히 ‘일제의 만행을 잊지 말자’, ‘사과를 반드시 받아내자’는 다짐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평화로운 세상과 아픔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는 다짐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미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인 디트로이트 북서부에 위치한 사우스필드 미시간 한인문화회관 앞마당에 ‘평화의 소녀상’이 우리 ‘소녀상’보다 이틀 늦은 지난 16일 설치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해외에서의 ‘평화의 소녀상’은 전 세계 곳곳에 더 많이 세워져야 한다. 전쟁과 폭력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파괴되고 있는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화성시는 일제의 ‘제암리 학살 사건’을 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의 동상 건립도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공원에 올 12월 건립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과 함께 34번째 민족대표로서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된 유일한 외국인으로, 1916년 세브란스의전 세균학 교수로 한국에 와 1919년 3월1일 역사적 독립만세의 현장을 사진으로 남겼으며, 3·1 운동 이후에 일본의 조선인 학살과 고문을 국제 사회에 고발하고 공개적으로 조선의 독립을 지지해 일제가 무단통치를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평화의 소녀상’과 스코필드 박사 동상은 희생자들과 스코필드 박사 개인을 기리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아픔을 겪은 만큼 강해진다고 했던가, 우리 국민들은 깊고 성숙한 눈으로 과거 아픔의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리고 그 일들이 현재 어떤 슬픔으로 남아있는지, 치유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행동하고 또 행동하고 있다.
누군가는 묻는다. ‘왜 외국까지 가서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어야 하냐’고 정답은 무엇일까?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서’는 시원한 답변이 아니다. 또 다른 ‘슬픈 8월’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지구촌 어느 곳에서도 고통 받는 사람이 없어야하기 때문이다.
제암리 순국선열의 유산을 껴안고 사는 우리 54만 화성시민들은 ‘평화’가 무엇인지,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알리기 위해 세계 곳곳에 ‘소녀상’ 정신 심기를 강력하게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