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이사를 했다. 오랫동안 살던 주택에서 아파트로 옮겼다. 한 집에서 30여년을 눌러 살다보니 버릴 것도 많고 몇 년째 쓰지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이 상당히 많았다.
세월의 더께만큼 쌓인 먼지며 성장기의 기억이 세월과 함께 낡아가고 있었다. 막내와 동갑이 된 벽시계는 하루에 두 번만 시간을 알려주고 뒤란의 절구와 공이는 무료해진 햇살을 빻고 또 빻으며 제 몸의 균열을 다스리고 있었다.
기둥에 눈금을 그으며 수시로 키를 재던 동생도 어느새 마흔 중반을 넘어서고 있으니 참으로 무상한 세월이다. 손때 묻은 물건을 버리지도 그렇다고 아파트로 옮겨가지도 못해 안타까워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의 삶도 저만큼의 자리에서 뿌리를 내렸구나 싶다.
이사를 갈 집과 새로 이사 들어올 사람과의 시간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림을 이십일 정도 이삿짐센터에 보관하기로 하는 과정에서 맡길 세간의 목록을 정확히 기록하지 않고 적당히 눈에 띄는 큰 제품과 가격에 대한 계약서를 작성했다.
아파트 리모델링을 하고 이삿짐을 받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어머니가 애지중지 아끼던 시루가 없어졌고 그 밖에 몇 가지 물품들이 오지 않았다. 의뢰업체에 확인한 결과 처음에는 그런 물품이 없었다고 발뺌을 하다가 이런저런 정황을 말하니 나중에는 이사 도중에 깨진 것 같다며 변상 해준다고 약속 하더니 두어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고 여러 차례 독촉을 한 결과 시루를 사왔는데 종전에 있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주 작고 허름한 시루를 사왔다.
어머니가 필요 없으니 그냥 가져가라고 하자 다시 사다주겠다며 돌아서서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시루를 깨뜨렸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조금 더 큰 시루를 사왔다. 더는 거절할 수가 없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시루를 받은 어머니는 속상해 했다.
운반과정에서 실수로 시루가 깨졌다고 사실대로 이야기하며 양해를 구했으면 그냥 넘길 일인데 보관하지 않았다고 우기다 나중에야 실수를 인정하는 일이며 컨테이너 박스 그대로 독립적으로 보관하겠다는 약속과는 달리 다른 집과 섞이면서 보관물품을 분실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없어진 물건이 가격으로 변상할 수 있는 것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가족사진이 담긴 앨범이라든가 책등 가격을 따질 수 없는 것일 경우는 참으로 난감하다.
이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로 시비가 생기고 새로 장만한 집으로 이사하는 기쁨보다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 약속과는 다른 서비스와 이사 과정에서 제품이 손상 될 경우 일단은 나몰라라 하다가 상대방의 반응 상태를 보아가며 보상해주는 업체를 간혹 보게 된다. 대부분의 포장이사 업체가 성실하게 작업을 하겠지만 업체들이 난립하다 보니 지키지도 못할 약속과 가격을 제시하고는 불미스런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바로 이사를 하는 경우는 물품을 분실할 일이 드물겠지만 보관했다가 이사를 하는 경우는 물품 목록을 세심하게 작성하고 분실되기 싶거나 파손되기 쉬운 물건은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아무리 포장이사가 다 해준다고 해도 귀중품이라든가 아니면 손수 챙겨야 할 부분들은 미리미리 챙기고 관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한국문인협회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안견문학상 대상 ▲시집-자작나무에게 묻는다 외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