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선 벌써/이별이 시작된다 /나무들은 모두/무성한 여름을 벗고/제자리에 돌아와/호올로 선다/누군가 먼길 떠나는 준비를 하는/저녁, 가로수들은 일렬로 서서/기도를 마친 여인처럼/고개를 떨군다/울타리에 매달려/전별을 고하던 나팔꽃도/때묻은 손수건을 흔들고/플라타너스 넓은 잎들은/무성했던 여름 허영의 옷을 벗는다/후회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먼 항구에선/벌써 이별이 시작되고/준비되지 않은 마음/눈물에 젖는다.
가을의 초입인 9월이 낭만과 설렘만 주는것 아니라 뭔가 준비해야 하는 계절임을 노래한 시인 문병란의 ‘9월의 시’다. 시에서 지적한 것처럼 지금까지 모두 허영 이었다면 이젠 겉치레의 옷을 벗어 버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게 9월이다. 특히 방학이 끝난 학생들에게는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새 학기의 시작이지만, 여름을 뒤로 한 채 새로운 달을 맞은 어른들에게는 고단한 삶을 준비해야 하는 긴장된 시간이기도 하다.
30년만에 빨리 찾아 왔다는 추석이 버티고 있고 가는 세월을 막지 못하듯 백로와 추분도 있다. 추분을 지나면 햇살의 꼬리는 더욱 짧아질 것이다. 그것은 한층 줄어드는 시간속에 할 일이 많다는 의미도 된다.
천재지변도 걱정이다. 그동안 9월에 내습한 가을 태풍이 81차례나 되기 때문이다. 가을 태풍은 유독 사납다. 한여름을 지난 태풍의 에너지도 그만큼 증가하는 탓이다. 1959년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가며 사망·실종 849명, 이재민 37만여명 등 엄청난 피해를 낸 ‘사라’도 9월에 발생했다. 5조1천억원의 재산을 앗아간 루사(2002년), 131명이 사망하고 4조2천억원의 재산피해를 낸 매미(2003년) 역시 가을에 왔다.
하지만 더 큰 걱정이 있다. 세월호에 침몰한 정치권이다. 오늘(1일)부터 100일 회기로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지만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 여야 간 합의점을 찾지 못해 정기국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지 불투명해서다.
그동안 국회는 지난 5월 이후 111일동안 본회의에서 단한건의 법안 처리도 못하는등 ‘식물국회’나 다름없었다. 이번에도 우려는 마찬가지다. 민생법안은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데 여야간 의사일정마저 협의를 마치지 못했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내년 예산안에 대한 부실·졸속 심사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준비되지 않은 마음'에 서민들이 ‘눈물에 젖을까’걱정이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