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규 부안군수가 원전센터 유치신청을 낸 것이 지난 7월 14일. 어느듯 5개월이 지났다.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이 깊은 상처만 남았다.
김군수는 반대 주민의 돌팔매로 입원해야 했고, 이후 계속된 반대 시위는 끝이 없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은 시위에 2만2000여명의 주민이 참가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연인원 8000명의 경찰이 투입됐다.
한때는 계엄령하의 저항군과 진압군간의 대결장 같은 상황도 없지 않았다. 사태의 책임은 정부 탓이 컸다. 되지도 않을 현금보상을 운운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돈이면 만사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은 황금만능주의가 위도 주민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군수가 유치신청을 내면서 주민의 의사를 십이분 반영하지 않은 것도 실수지만 은근히 내비친 소영웅주의도 문제였다.
이제 위도 원전센터는 백지화된거나 마찬가지다.일부주민들이 유치 찬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반대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부각되지 않는다. 건진 것 없이 나라안을 소란하게 만들었던 윤진식 산자부장관이 물러나고, 이희범 서울산업대총장이 장관 자리에 오른 것이 변화의 전부다.
이제 원전센터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새로운 유치신청을 받기로 했지만 선뜻 신청할 곳이 있을지 의문이다. 원전센터 유치 실패는 이번만이 아니다.
정부는 1989년에 충남 안면도, 1990년도엔 영종굴업도를 원전센터 부지로 지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두 곳 모두가 결사반대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군부 독재의 위력이 통하던 때였지만 민중의 힘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위도의 경우는 접근방식이 과거와 달랐다, 하지만 민중을 설득하기는 커녕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과거와 다를바가 없었다. 참여정부의 한계를 보인 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