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7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이 확정·발표되었다. 정부는 사적연금 확대의 필요성을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의 짧은 가입기간과 낮은 소득대체율로 노후소득보장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공적연금의 제도적 문제가 발생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보장성 강화를 통해 공적 소득보장을 건실하게 만드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자 기능일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국가가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에 대한 강화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채 사적연금을 마치 최우선 해결책인 냥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공적연금은 국가가 관장하는 제도로서 공법에 의해 권리가 보장되며, 사회적 위험 및 생애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구성원 전체가 사회보험을 통해 위험을 예방하고 대응한다. 이에 계급 간, 계층 간, 세대 간 연대가 제도를 통해 구현됨으로써 재분배효과를 제고시킬 수 있다. 반면 사적연금은 계약의 주체가 민간 금융회사나 보험회사와 같은 개인사업체가 되기 때문에 개인 간 계약에 기반을 둔 민법체계에 따른다.
이에 사적연금은 사회적·경제적 재분배가 발생하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보면 공적연금에서는 소득의 수준에 따라 차등적인 급여가 발생되지 않지만, 사적연금은 소득의 수준에 따라 계약하는 상품에서부터 다양한 수준이 존재하고, 급여는 계약한 상품에 따라 결정된다. 즉 소득이 낮은 시민의 경우 사적연금시장을 통해 높은 급여가 보장된 연금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 국민연금의 경우 모든 가입자에게 똑같은 보험료율을 적용하되(현재는 소득의 9%/사업장 가입자의 경우 사업주와 노동자가 절반씩 부담), 급여를 지급하는 데 있어 균등부분이라는 산식을 적용함으로써 가입자 평균소득보다 낮은 대상자에게는 더 높은 급여율을 제공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렇게 볼 때 공적연금은 노후 빈곤예방과 노년기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전제적인 국가의 제도가 된다. 이런 국민연금은 공적연금으로서 기능과 목적을 축소시키며 발전해왔다. 또 40년 간 꾸준히 보험료 납부를 전제로 급여수준을 결정해 왔다. 이에 도입년도인 1988년 소득대체율 70%에서 시작되어 향후 2028년 까지 40%로 삭감되도록 개혁되었다.
문제는 40년간 노동시장에 머물 수 있는 직종이 거의 없다는 점과 IMF 이후 우리사회는 꾸준히 노동유연성을 강화시켜 고용자체가 매우 불안정해져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국민들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할 수 있는 기간은 향후에도 평균 20년 내외로 예측된다. 이렇게 되면 실제 보장성은 2028년을 기준으로 40%가 아니라 절반인 20%로 떨어진다. 예를들어 소득 200만원인 노동자가 매월 9만원씩 20년간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할 경우 평균 40만원의 연금급여를 수급 받게 된다. 수익비의 관점에서 이 노동자는 연금급여 수급 9년이 되면 원금을 모두 받게 되고, 그 이후부터는 추가적으로 급여를 받게 되기 때문에 기대여명의 측면에서는 수익비가 상당하다. 그러나 월 40만원이라는 급여액의 수준으로는 국민연금의 제도적 목적인 ‘연금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에 충실하기 어렵다. 더욱이 고용 불안정성 심화와 지역가입자 소득단절 등의 문제로 20년 간 보험료 납부유지가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면 연금급여는 더 떨어질 수 있다.
이렇게 변화된 노동시장 및 사회 환경의 문제를 고려해서 국민연금이 공적연금으로서 기능을 강화시켜야 할 국가가 난데없이 시장에 기대는 퇴직연금제도 강화를 노후소득보장 강화인 냥 들고 나온 것이다. 개인적으로 노후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은 국가가 역할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신들에게 적합한 상품을 계약한다. 문제는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국민들의 노후준비가 점점 더 막막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제도의 사각지대 해소와 삭감된 보장성 강화를 위한 대책수립으로 공적연금 강화는 가능하다. 이러한 대책을 정부가 마련할 때 비로소 국민들의 노후소득보장을 염려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