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최초의 생명체인 박테리아(bacteria)가 출현한 것은 38억년 전이다. 지구의 나이가 46억살로 알려져 있으니 지구 탄생 후 8억년 뒤의 일이다.
당시 박테리아들은 산소도 없고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박테리아의 광합성 활동으로 지구에 산소가 만들어지자 더욱 많은 종류가 탄생했고, 각각의 생명체들은 시간의 흐름과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진화를 거듭했다. 인간의 탄생도 여기서 비롯됐다는 설이 등장하는 이유다.
인체에 기생하는 박테리아 중 유해한 영향을 미치는 박테리아는 1%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화와 영양의 흡수를 돕는 장속 박테리아와 마찬가지로 신체 기능에 유익한 역할을 하는 박테리아 혹은 무해한 박테리아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에 해를 끼치는 박테리아의 비율이 극단적으로 낮은 반면 박테리아 감염으로 질병에 걸리는 일은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난다.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박테리아를 죽이기 위해 항생제를 자주 사용하다 보면 병원균이 항생제에 스스로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 그리고 점점 더 내성이 강해지고, 그러다 결국은 어떤 강력한 항생제에도 저항할 수 있는 박테리아가 생겨나기도 한다. 바로 ‘슈퍼박테리아’다.
인류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초강력 세균이 박테리아지만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세균 또한 그들이다. 유제품과 김치 등에 들어 있는 유산균이 대표적이다. 그밖에 당분을 알코올로 만드는 효모, 항생 물질인 페니실린을 얻을 수 있어 많은 세균성 질환의 치료에 도움을 주는 푸른곰팡이 등도 있다.
그런가하면 환경재앙을 막아주는 박테리아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지난 1987년에는 기름의 주성분인 탄화수소를 먹는 박테리아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리고 몇년 전 중국 대련 항에서 발생한 송유관 폭발사고 때 약 23t의 이러한 박테리아를 활용, 기름을 제거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방사성 폐기물을 먹고사는 희귀 박테리아가 영국 맨체스터대학 연구진에 의해 세계 최초로 발견됐다고 한다. 연구진은 해당 박테리아를 유사 방사성 오염 토양에서 실험을 진행한 결과, 핵폐기물을 분해해내는 탁월한 기술이 있음도 확인했다.
인류생존에 큰 위협이 될 방사성폐기물을 지구 최초의 생명체가 제거할 수 있다고 하니 ‘병(病)주고 약(藥)주는’ 박테리아의 존재가 신기할 뿐이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