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떠올려보면 말에 대한 속담이 무수히 많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로부터 시작하여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등 선인들은 무수한 속담과 격언을 통해 말의 중요성과 조심성을 강조해 왔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의 말이 누구에게는 약이 되고 누구에게는 독이 된다. 특히 상대방을 보지 않고 전화로 대화를 할 때는 더 조심스럽다. 상대의 상황이나 표정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원치 않는 오해가 생길 수 있기에 언어예절을 꼭 지켜야함을 새삼 확인하는 날이다.
두어 해 전부터 매장의 벽에 물이 스미기 시작했다. 처음엔 벽이 젖어드는 정도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바닥까지 물이 고이더니 급기야는 사무실 벽까지 물이 타고 내려와 출근을 해 보면 사무실에 물이 흥건히 고인다.
건축한 지 40여년 정도 되다보니 건물이 노후되어 생기는 현상이라 생각하고 옥상이며 여기저기 누수가 될 만한 곳을 찾아 방수하고 2층에 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물은 여전히 흘렀다.
궁리 끝에 벽이 맞닿아 있는 옆 건물에 양해를 구하고 올라가 보니 물이 흘러내리는 위치와 옆 건물의 화장실 위치가 일치했다. 조심스럽게 건물주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해당 건물의 건물주는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건물과 건물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기 때문에 물이 우리 건물로 타고 내려올 수도 없고 또한 건물의 하수관이 건물 안쪽에 있기 때문에 전혀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며칠 후 옆 건물 2층의 세입자가 이사를 가고 건물이 공실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흐르던 물이 감쪽같이 잦아들고 벽이 뽀송뽀송 말라갔다. 옆 건물주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그래도 그건 자기네 때문은 아니라고 하며 원인은 다른 곳에 있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며칠 전 옆 건물에 세입자가 들어왔고 다시 벽에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정황상으로 보아 원인은 옆 건물의 2층에 있다는 확신이 들어 전화를 걸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하자 건물주는 화를 냈고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고, 확실치도 않는데 성가시게 한다는 듯 언성을 높이며 누수 전문가를 불러 확인해본 후에 말하라고 했다.
나는 당황했다. 그렇다고 옆 건물주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서로가 전문가가 아니니 누구 말도 지금으로선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정답은 전문가를 불러 진단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뒤통수를 한데 얻어맞은 불쾌감이랄까 그렇게까지 언성을 높일만한 대화를 한 것도 아닌데 화도 나고 속도 상했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지에 대해 궁리하고 있는데 옆 건물주에게 전화가 왔다. 좀 전에는 본인이 누구와 다투고 있던 중에 전화를 받게 되어 본의 아니게 언성을 높였다며 사과의 전화를 하면서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보고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말했다.
나 또한 성가시게 해드려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처음 통화를 끝낼 당시의 심정으로는 받은 만큼 되돌려 주고 싶어 끙끙 앓고 있었는데 이내 먹은 마음이 풀어졌다. 상대의 사정을 알지 못하고 서로가 자기의 형편만 이야기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오해가 생긴 점도 있지만 상대를 마주하고 하는 대화가 아닐수록 내 감정에 충실하기 보다는 기본에 충실할 수 있는 대화법을 습득해서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덕목을 쌓아가는 것도 삶이 지혜가 아닐까 싶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자작나무에게 묻는다 외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