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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향기가 나는 그림 한 장

 

커다란 양푼이에 흰 밥을 쏟아 넣고, 이맘 때 추석이면 제 맛을 낼 줄 아는 여린 조선배추 북북 찢어 갖은 양념으로 쓱쓱 비벼 낸 비빔밥. 앞 접시마다 한 주걱씩 퍼 나르면 금세 동이 난다. 대청마루 그득히 차 앉은 집안 대소가, 대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시간이다.

간이 짜니, 참기름을 더 넣자는 등의 훈수를 들어가며 여자들, 사촌지간 여덟 동서들이 양푼이 째 숟가락 들락거리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주방은 또 다른 세상. 물론 처음엔 어색하고 생소한 분위기에 적응하기 어려워한 동서들도 있었지만 밥상머리에서 정이 피어오를 거라던 작은 아버님의 말씀대로 여덟 동서들과 가족들은 벌써 몇 년 째 화기애애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한 자리에 가족 친지들이 모두 모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이른 봄 가장 먼저 노랗게 피어 숱한 사람들 불러들이는 고향 산수유마을의 산수유축제도 불러들이지 못한 친인척. 그저 뿔뿔이 흩어져 내 어머니 만나러 한 번씩 들어왔다 나가면 그만이라, 길 가다 만나면 5촌도 몰라보는 건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 수십 년째 제자리 지키는 벽걸이 흑백 사진 속 주인공처럼 서서히 색이 바래지고 있는 친인척의 의미, 그 그림에 다시 채색을 시작한 건 칠순을 훌쩍 넘긴 집안 어른인 작은 아버님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직장따라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친인척들이 일 년에 한 번이라도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추석날만큼은 따로 차례를 지내지 말고 조상 묘를 함께 찾아 성묘도 올리고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갖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각자 산소에 올릴 음식을 만들어 한 자리에 모이고 함께 성묘를 하고 그 음식 나눠먹으며 만나지 못한 시간만큼 부족한 정을 채우자며 마당 넓은 시골집을 내놓으신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다. 원인과 현상이 일시적이든 물리적이든 관계없이 언제나 세상은 변해간다고 했다. 그 변화의 큰 흐름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더디게 변하기를 바라 아름다운 그림 한 장 붙잡아 놓고 싶으셨던 것이다.

하늘이 환하게 그려지고 흰 구름 몇 조각 서쪽으로 유유히 날고 있다. 기와지붕 몇 채 품은 동네 가운데 달국댁이 모처럼 왁자지껄해진 시간. 오촌 당숙과 조카들이 섞이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3대 몇 가족이 한 자리에 섞여 식사를 하는 이 시간. 마당을 건너 몇 채 헛간까지 사람소리로 그득하게 차 앉으면 멋진 한 장의 풍속화가 완성된다.

그 아름답고 구수한 그림을 펼쳐놓고 기분 좋게 감상하며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후손들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어르신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아이들과 더불어 방방마다 웃음으로 채우며 그 그림 함께 그리고 있는 것이다.

얼핏 명절 때마다 화려하게 떠나는 해외여행객에 비해 참으로 촌스러울 것 같기도 하지만 참기름처럼 고소한 정이 넘쳐 더없이 아름다운 그 그림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기를, 그 그림 뿜어내는 향기가 아이들에게 충분히 물들 수 있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에세이 문예 등단 ▲한국 에세이 작가연대 회원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평택문협 회원 ▲독서토론논술 문화원 원장 (현)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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