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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계절을 입다

 

가을이 들어찼다. 누릇해진 나락이며 휘어진 밭두렁엔 콩이 깍지를 채우기 위해 시월의 햇살을 분주히 끌어당기는 중이다. 일교차도 한몫 거드는지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제법 크다. 며칠째 미루던 옷 정리를 한다. 입자하면 입을 것이 마땅찮아 뒤적이던 옷들이 꺼내 놓으니 뭐가 그리 많은지 수북하다. 계절이 바뀌도록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도 여러 가지다. 눈에 보이지 않아 못 입은 옷, 커서 혹은 작아서,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아서 눈 밖에 난 옷 등. 많은 옷가지가 여름 볕 한 번 보지 못하고 옷장에서 한 해를 또 보낸다.

불과 며칠 전 꼭 필요한 등산복이 있어 온 집안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아 할 수 없이 새로 장만했는데 이제야 빼꼼 나 여깃소 하고 나온 옷이 얄미워 홱 집어 던진다. 딸아이가 유행이 지났다고, 어울리지 않아 입기 싫다며 꺼내놓은 옷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내 옷장 속에서 개켜놓은 것들 하며 옷장이 빽빽하다.

어차피 입지 않은 옷인데 다 끌어안고 있지 말고 좀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두라고 핀잔하는 남편의 말에 입을 삐쭉거리며 한 번쯤은 입을 일이 생길까 싶어 다시 챙겨 넣기를 반복한다.

다이어트로 인해 몸이 줄었을 때 장만한 옷이 다시 작아져서 입을 수 없어 그냥 옷장만 차지하고 있지만, 조만간 다시 살을 뺄 거라는 욕심에 다시 차린다. 이번엔 기필코 입지 않는 옷은 버려야지 작정하고 옷 정리를 시작했는데 막상 손을 대고 보면 이건 이래서 아깝고 저건 저래서 아깝고 몇 년을 입지도 않으면서 다시 쌓고 또 쌓아 옷장이 꽉 찼다.

옷뿐만이 아니다. 사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욕심을 내다보면 늘 포화상태다. 하나보다는 둘이 좋고 없어도 괜찮지만 있으면 더 좋기에 또 욕심을 내게 된다. 생각으로는 겉은 비우고 속은 채우며 살자면서도 일상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네 식구 살면서 냉장고는 김치통 하나 들어갈 자리가 없이 꽉 차있고 냉동고 역시 이런저런 것들로 가득해 뭐 하나 찾으려면 이것저것 다 꺼내는 번거로움을 겪게 된다. 그렇다고 먹을 것이 많은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많은지…….

작정하고 냉장고 정리를 하다 보면 김치통이 몇 개씩 들어있고 언제적 먹다 남은 밑반찬과 검은 봉지에 둘둘 말린 채 야채실에서 시들어가고 있는 신선한 채소들을 볼 때는 아차 싶기도 하다.

시세보다 싸다 싶으면 사들이고 하나 더하기 하나 상품이 있으면 사재기하고 떨이로 싸게 준다고 하면 또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사다 쟁여놓은 물건들이 채 먹지 못하거나 아예 잊어버리고 손도 못 대고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정말이지 주부로서는 낙제다. 꼭 필요한 물건만, 필요한 양만큼 사서 알뜰하고 살림하자고 다짐하지만, 막상 기회가 오면 또 욕심을 낸다. 아직도 한참 멀었다.

아이들에게는 과소비하지 말라고 꼭 필요한 소비만 하고 살자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주부인 나는 말이 앞설 뿐 지키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또 하나의 계절이 넘겨졌다. 머잖아 잎을 떨궈 겨울을 채비할 수목들처럼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보다 얼마나 어려운지, 비우고 있어야 또 다른 것을 채울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궁색한 내 처소인 옷장을 정리하면서 비우지 못하는 마음 한 자락 슬며시 좀약처럼 구겨 넣는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안견문학상 대상 ▲시집- 자작나무에게 묻는다 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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