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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바늘 하나로도 적장을 잡는다

 

몸으로 익히는 무예든, 머리로 익히는 공부든 그 핵심은 반복이다. 똑같은 동작이라도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을 하면 그 움직임은 몸 속 깊은 곳에 소중하게 자리잡게 된다. 글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글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수한 반복을 통해 좋은 문장을 외우거나 그 문장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에 있다. 이런 반복을 통해 우리의 몸은 자신의 의지를 능가하는 또 다른 영역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옛 이야기 중 무예수련의 반복과 관련하여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때는 임진왜란 시절이었다. 왜군의 진격속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른 것이었다. 불과 채 20일이 안되어 조선의 수도인 한양이 적의 손아귀에 떨어질 정도였다. 이를 방어하기 위하여 조선은 명에 원군을 요청하였고, 조금씩 전세를 역전시켜 나갔다. 전쟁이 발발하고 5년 후 강화조약을 맺기 위해 잠시 냉전 상태를 거듭하다가 다시 창칼과 조총의 화력이 난무하는 2차 전쟁이 펼쳐졌다. 1597년에 발생한 정유재란이었다. 당시 명나라 장수 마귀(麻貴)는 제독이라는 최고 지휘관 신분으로 주요 전투를 이끌었다. 왜군의 진격로를 막기 위해 투입된 조명 연합군은 경기도 소사 부근에서 왜군과 조우해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첫 전투의 승기를 잡는 쪽이 곧바로 이어질 큰 전투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기에 서로 팽팽한 긴장감이 양진영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왜군 쪽에서 한 장수가 기세등등하게 칼을 휘두르며 달려 나와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그것을 본 조명 연합군 진영에서도 긴 창 한 자루를 멋지게 휘두르며 달려나갔다. 그러나 단 몇 합도 제대로 겨뤄보지도 못하고 창은 부러지고 왜군의 칼에 맞아 목이 날아갔다. 이후 연달아 네 명이 달려 나가 왜군에 맞서 실력을 겨뤘지만, 모두 그 칼에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연달은 승리로 더욱 기세가 오른 왜군은 조명 연합군의 진영에 더욱 근접하여 비웃는 등 도발을 하였다. 이 광경을 본 최고 지휘관인 마귀 제독은 군령을 내려 왜군을 상대하는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릴 것이라 크게 알렸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 나서려 하지 않았다.

이때 조선군 중 가장 신분이 낮은 군사 한명이 조용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마귀에게 인사를 하고 맨손으로 그 신출귀몰한 왜군을 없애겠노라고 이야기 하였다. 이것을 본 다른 군사들은 모두들 어이가 없어 비웃었다. 아무도 대적하겠다는 군사들이 없자, 마귀는 그를 왜군 앞에 서게 하였다. 큰 칼을 휘두르며 몇 명을 두 동강 낸 왜군 역시 맨몸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춤같은 이상한 동작을 하는 조선군사를 반즈음 미친 사람으로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기세등등하던 왜군이 땅바닥에 꼬꾸라졌다. 맨손으로 대적한 조선군사는 천천히 걸어가 왜군의 목을 잘라 연합군 진영으로 돌아왔다. 이후 전투는 당연히 조명연합군의 대승이었다.

마귀는 그 조선군사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 군사가 말하기를 “어려서 앉은뱅이가 되어 혼자 방에만 있었는데, 하도 심심해서 바늘 한 쌍을 창문에 던지는 연습을 수없이 했다”고 했다. 친구도 없어 매일 방안에 틀어 박혀 바늘 던지기만을 반복했는데, 3년을 매일같이 바늘을 던지자 언젠가부터는 원하는 곳 어디라도 마음만 먹으면 바늘을 창처럼 던질 수 있었다고 했다. 이후 어른이 되고 다리에 힘이 붙어 완쾌되었고,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왜군이 허름한 복색의 조선군이 맨몸으로 춤을 추자 비웃으며 깔보았고, 이때 기회를 보아 그의 눈에 바늘을 꽃아 뇌수를 관통시킨 것이었다.

위의 이야기는 18세기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던 성대중(成大中)이 남긴 『청성잡기(靑城雜記)』라는 책에 실린 글이다. 이러한 반복 수련의 요체가 ‘단련(鍛鍊)’이다. 단련의 사전적 정의는 ‘금속에 불을 달구어 두드려서 튼튼하게 함’이다. 인체를 물리적으로 수련을 통해 끊임없이 강화시켜 내거나 책을 통해 마음의 공부를 쌓는 것이 단련의 본질인 것이다. 그래서 ‘단(鍛)’에는 천일을 수련하는 것이고, ‘련(鍊)’에는 만일을 갈고 닦는 다는 ‘천단만련(千鍛萬鍊)’이라는 무예 수련의 명언이 만들어진 것이다. 안되면 될 때까지 반복하면 언젠가는 모든 일이 된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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