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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도깨비 씨름과 진짜 도깨비

 

씨름은 두 사람이 샅바나 띠 또는 바지의 허리춤을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는 전통무예이자 민속놀이다. 여타의 무예와는 다르게 몸과 몸을 맞대고 상대를 먼저 땅에 넘어뜨리는 방식으로 승부가 결정 나기에 요즘으로 치면 유도와 같은 유술(柔術) 형태의 무예로 볼 수 있다. 씨름은 다른 맨손무예와는 달리 맨살과 맨살이 직접 닿는 가운데 서로의 땀과 열기를 교환하기에 가장 섬세하면서도 친밀도 높은 무예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에서 고구려 무덤벽화에도 힘 좋게 생긴 두 역사가 서로의 허리춤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오랜 몸문화 전통을 이어 온 무예로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임금이 펼치는 연회에서도 씨름은 각광받는 종목이었다. 각각 편을 나눠 승부에 따라 다양한 내기를 걸어 잔치의 흥을 돋우는 역할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기층 백성들에게도 널리 퍼져 여러 풍속화에도 등장할 만큼 보편화된 무예이기도 했다.

그런데 전통시대 씨름을 가장 좋아한 것은 다름 아닌 ‘도깨비’다. 우리에게 도깨비는 건망증이 심하고, 사람 골리기가 취미이며, 금은보화를 가져다주는 재물신으로도 기억된다. 도깨비 씨름에 대한 옛날이야기 한 자락을 풀어 보면 그들의 존재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장에 갔다가 친구를 만나 거나하게 술 한 잔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전통시대 장은 삼이나 오일에 한번 열려 인근 마을 사람들이 각종 생필품을 사러 나오기에 좋은 만남의 공간이기도 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얼큰하게 취한 채 고갯길을 넘어가는데, 그 녀석이 나타났다. 바로 도깨비였다. 녀석은 장을 보고 온 물건 중 고기를 내놓으라고 대뜸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그래 식구들을 위해 산 고기라서 줄 수 없다고 하자, 녀석은 씨름을 해서 지면 고기를 주고, 자신이 지면 금은보화를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고기를 들고 가던 사람 역시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으로 씨름대회가 있을 때마다 황소 한 마리를 독차지했던 지라 그 말에 승낙하고 바로 씨름판을 벌였다.

양 허리춤을 붙잡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겨뤘지만, 쉽게 승부가 나질 않았다. 결국 밤새도록 씨름을 하게 되었고, 새벽녘에야 겨우 도깨비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러고는 바로 잡고 있던 허리띠를 풀어 나무에 묶어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도록 아버지를 기다리며 걱정하던 식구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 보았더니, 아버지는 장보고 오는데 어떤 털북숭이가 씨름을 하자고 시비를 걸어 한판 제대로 이기고 나무에 묶어 놓고 왔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날이 환하게 밝아 식구들이 씨름을 했던 자리를 찾아 가보니, 거기에는 사람은 없고 쓰다 버린 몽당 빗자루가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그제야 식구들은 도깨비에게 홀려 씨름을 했음을 알았다. 다시 집에 와서 솥뚜껑을 열어보니 그 속에 금은보화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이었다. 도깨비가 약속을 지킨 것이다. 식구들은 그 금은보화를 모두 꺼내 동네에서 큰 잔치를 벌였다.

그런데 하루 밤만 지나면 다시 금은보화가 솥단지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이었다. 도깨비가 건망증으로 계속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렇게 부자가 되었다는 옛날이야기의 한토막이다. 이처럼 우리네 도깨비는 너무 무섭지도 폭력적이지도 않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여담이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들어 있는 붉은 피부에 뿔을 달고, 짐승 가죽으로 된 옷을 입으며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것이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도깨비의 모습은 우리 전통 도깨비의 모습이 아닌 일본 요괴 중 하나인 ‘오니’의 모습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강제로 일본의 귀신을 우리의 도깨비로 각인시킨 것이다. 일제 강점기 교과서에 처음으로 실린 혹부리영감이야기와 도깨비는 일본의 민담을 조선화한 것이다. 민담이나 전설마저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 시절 안타까운 기억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도깨비 씨름을 생각하며 지나간 역사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는 우리의 기억 속에 제대로 된 도깨비를 그려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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