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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신남존여비(新男尊女卑)

 

가을도 이제 막바지로 들어섰다. 단풍으로 울긋불긋 하던 산들은 어느새 갈색으로 변하고 소나무나 잣나무 같은 침엽수만 꿋꿋이 변치 않는 그 모습 그대로 산을 지킨다. 물론 남부 지방은 이제 단풍이 한창이라고도 하지만 중부산간 지방은 벌써 첫눈이 내렸고 고인 물은 얼고 밖에 세워 놓은 차는 하얗게 성에를 뒤집어쓰고 밤을 새운다.

한 때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은행나무는 다른 나무나 들풀처럼 마른 이파리 하나 지니지 못해 유난히 추워 보인다. 가을날에는 멀리서 보아도 금방 눈에 띄던 금빛 잎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으나 아무것도 지닌 것이 없는 가장 초라한 몰골로 서 있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계절의 질서에서 비켜갈 수는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한다.

우리 삶에 있어서도 영화는 이렇게 짧게 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이제는 짧았던 영화보다는 가을의 상징으로 여기던 은행나무가 가로수에서 퇴출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시야를 가리고 은행잎의 특성상 미끄러운 성질 때문에 길에 떨어지면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렇고 차도에 쌓이면 미끄러워 위험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 후 은행나무는 윗부분이 잘려나가고 무슨 기둥처럼 뭉툭하게 서있는 곳도 간간이 보이더니 차츰 베어져 덜 보이고 있었다.

어느 지역에서는 거리의 은행잎을 필요로 하는 관광지에 공급해서 쓰레기도 줄이고 관광자원으로 재활용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해서 좋은 아이디어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올 가을에는 생각도 하지 못한 이유를 들어 은행나무는 또 다시 위기를 맡게 되었다.

이유인즉 은행나무는 암수 구별이 있는 나무라 마주 보고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은행이 익으면 살구처럼 주황색의 열매가 떨어지는데 손으로 만지면 옴이 옮는다고 해서 장갑을 끼어야 하는 것이 필수다.

그러나 그렇게 수확을 하고도 손질하는 과정이 번거롭고 냄새가 고약해서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 주워가는 사람들도 없고 그 자리에서 밟아 터지면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고 해서 은행나무를 없애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민주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그런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 결국 그런 방행으로 결정이 지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라 해도 이 결정에는 조금은 씁쓸함이 남는다.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열매를 맺는다는 이유로 베어져야 하는 암 나무의 은행나무가 예전에 아이를 특히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쫓겨나거나 뒷방에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우리네 옛 여인들을 떠올라 사뭇 씁쓸하기까지 하다.

요즘은 무슨 일에나 관련된 사람들이 세를 규합해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고 시위를 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데 만일 나무에게 말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준다면 그들은 우리를 향하여 무슨 말을 할까?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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