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4일 홍준표 경상남도 지사는 내년도 도 예산에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여 큰 논란이 일었다.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11월6일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재원을 더 이상 부담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도 내년도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을 중앙정부가 책임지라며 동조했다. 지자체장과 교육감들이 복지재원의 부담문제를 놓고 중앙정부와 벼랑 끝 대치 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급기야 11일에는 경남도의 18개 시군이 내년도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지 않기로 뜻을 모았다. 사태 전개에 따라서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복지의 중단이라는 파국적인 상황도 배제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지방은 중앙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노인기초연금과 무상보육을 시행하면서 그 부담을 지방정부에 떠맡겨 가뜩이나 옹색한 지방재정을 파탄지경으로 내몰고 있다고 아우성이고,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당연히 떠맡아야 할 책임을 중앙정부에 전가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복지재원을 둘러싼 중앙과 지방정부 간 갈등은 빠르게 여야 정치권으로 옮겨 붙어 증세 논란으로 불거지고 있다. 여권이 지금껏 고수해 온 ‘증세 없는 복지’가 구조적인 한계에 봉착하면서 ‘증세’냐 ‘복지 축소’냐의 갈림길에 선 모양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10일 “보육이냐, 급식이냐의 극단적 이분법으로 끌고 가면 파국은 불 보듯 뻔하다”며 “이 문제의 근본은 재원 조달에 있지 어느 한쪽을 포기할 문제가 아니다. 해법은 증세 문제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증세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기구’의 구성을 촉구했다.
여당인 새누리당 내에서도 기존의 입장과는 다른 태도 변화가 감지된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복지를 계속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증세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기조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완구 원내대표도 “우리부터 솔직해져야 한다. 각종 선거 때 야기된 ‘무상 세례’에 대해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여당은 증세문제에 민감해 하면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문제 인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내년도 예산을 둘러싸고 중앙과 지방정부 간, 그리고 여야 간 복지 논쟁으로 확대되는 현 상황을 필자는 우리의 복지 수준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와 향후의 청사진, 그리고 소요재원의 조달에 관한 근본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싶고, 필요하다면 야당에서 말하는 ‘대타협기구’의 구성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육박하는 우리나라의 낮은 복지 수준과 높은 소득 불평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복지 수요는 팽창할 수밖에 없고, 지금 상황도 그 과정에서 불거진 진통에 불과하다. 현재의 상태로 대책 없이 표류할 경우 개혁을 두고 뜨거운 감자가 된 공무원연금보다 오히려 몇 십 배나 더한 그림자를 우리 경제에 드리울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앞으로 확대가 불가피한 복지 재원을 담뱃세, 주민세 인상 등의 편법으로 대처하는 방식은 그 한계가 너무나 분명하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복지제도를 유지하는 데만도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이를 몇 년이나 더 버텨나갈 수 있을까? 반론도 만만찮지만, 증세를 통한 재원 조달이 불가피하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과 복지 관련 시민단체들의 견해다.
다행이 우리의 담세 수준이나 사회보장기여금을 포함한 국민부담률은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OECD 자료에 나타난 조세부담률의 국제비교를 보면, 2010년 기준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국내총생산액(GDP)의 19.3%로 OECD 34개국 평균 24.7%에 비해 한참 낮고, 국민부담률도 OECD 평균 34.6%에 비해 26.8%로 네 번째로 낮다.
대선공약이니 조세저항이니 하여 한, 두 해 미룬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여론조사에서도 복지를 위한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국민 의견이 다수로 나타나고, 야당조차 증세 불가피론을 제기하는 이때 정부가 정공법으로 이 문제를 돌파하길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