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쌀쌀해지면서 더 뜸해진 걸까. 어슬렁어슬렁 다가선 노인 한 분이 한참을 앉아 두리번거리다 떠난 자리. 빈 의자는 오래도록 혼자였지만 해가 지도록 아무도 찾지 않았다.
요즘 아파트 놀이터는 마치 그 빈 의자처럼 공허한 외로움으로 사치스런 우울증을 앓고 있다. 간혹 스치듯 지나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위안삼아 빈 그네를 바람에 흔들어보기도 하며 그 쓸쓸함을 이겨내고 있는 것 같다.
살아가는 데는 공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것도 미리 하는 공부가. 미리라는 말에 큰 의미를 둔 숱한 예비엄마들은 태아가 태동을 시작한 그날부터 음악, 동화, 영어 말을 들려주며 공부라는 것을 한다. 그렇게 태아도 공부를 시작한 터에 놀이터에서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그저 쪽잠 자듯 틈날 때, 학원 갈 때 잠시 지나치는 그림의 떡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놀이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없는 잘 꾸며진 아파트 놀이터를 보면 자꾸 옛날 생각이 난다. 저런 멋진 놀이터가 그때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에.
골목길이 유일한 놀이터였던 그 시절엔 돌멩이 몇 개, 막대기 한 두 개만 있어도 놀이가 가능했다. 공기놀이, 자치기, 구슬치기, 비석치기, 땅따먹기 등. 마치 풍속화의 한 장면 같이 남아있는 기억들이지만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늙수그레한 어른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고 말 수가 많아진다. 놀이란 그렇게 수십 년의 시간을 보내고도 푸근하고 활기찬 힘으로 남아있다.
골목길 놀이터에 어른들은 함부로 개입하지 않았다. 또래들이 나름대로 규칙을 정하고 반칙을 하면 벌칙을 주고, 전체를 위해 한 사람이 희생하기도 하고, 짝이 맞지 않거나 놀이에 끼지 못하는 아이에겐 깍두기를 시켜 주며 키워낸 사회성. 그것이야말로 평생을 살아가며 부딪칠 수밖에 없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배려와 협동으로 일궈갈 수밖에 없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힘 말이다.
수업시간 중간 중간 10분만 시간이 남아도 게임하자며 조르는 아이들과 섞여 온 몸으로 웃다보면 잠시잠깐 옛날로 돌아갈 때가 있다.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놀이에 푹 빠져 마냥 깔깔댈 줄 아는 그 아이들을 보며 나는 또 다른 희망을 보았다. 시간, 공부에 쫓기면서도 꿋꿋하게 순수한 그들만의 정서를 풀어내며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학원, 학교, 대문 밖 살벌한 세상을 끊임없이 맴돌면서도 자기색깔 만들어가려 애쓰는 요즘 아이들. 그들에게 옛날의 아이들이 골목길 누비며 키워왔던 그 싱싱한 정서를 전해주고 싶다.
밤늦도록 또래들과 뒤엉켜 뛰어놀아도 위험하지 않은 환경.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공부걱정 안하고 맘껏 놀아도 되는 여유 등. 모두가 어른들의 생각이 달라져야 가능한 일이다. 혼자서 노는 아파트 놀이터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집안에서 혼자서 노는 아이들의 닫힌 마음을 위해서 어른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이 무럭무럭 자라길 바라고 있다.
▲에세이 문예 등단 ▲한국 에세이 작가연대 회원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평택문협 회원 ▲독서토론논술 문화원 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