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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필살기는 단순함이다

 

어릴 적 오락실에 가면 작은 동전을 넣고 수많은 캐릭터를 골라 접전을 펼치던 격투게임이 가장 인기가 좋았다.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과 같은 대전 오락기는 당대를 살았던 아이들에게 격투의 꿈을 실현시켜 주는 대체물이기도 했다. 요즘에도 쉼 없이 단계가 올라가 아직까지도 오락실 한 귀퉁이를 장악하고 있으니 그 로망은 여전하다. 그런데 그 대전 격투 오락을 하다보면 연속기(속칭 콤보)와 필살기가 등장한다. 자신이 위기에 처할 때 온 신경을 집중해 동그란 왕구슬이 달린 이동기와 단추 몇 개를 조작해서 가장 멋지고 화려한 기술로 적을 제압한다. 마지막 필살기 공격에 적은 쓰러지고 화면은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리게 펼쳐지며 승리의 기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실제 무예에서는 그렇게 화려한 공격법이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를 발산해서 순간적으로 전투력을 높이거나 혹은 기를 한 곳에 집중해서 장풍같은 엄청난 기술을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히려 가장 기본적으로 쉼 없이 익혔던 단순한 기술이 필살기처럼 활용된다. 상대를 향해 좌우의 손을 가볍게 연속적으로 뻗은 후 낮은 발차기 하나, 혹은 상대의 들어오는 칼을 흘리듯 받아 내고 이어서 짧은 머리나 손목을 가격하는 단순한 동작들이 훨씬 안전하게 적을 궁지에 몰아넣는 방법이다. 동작이 크거나 화려하면 그만큼 자신의 방어력도 떨어지게 된다. 필살기는 단순한 것이다.

이런 단순함은 단지 개인간의 전투 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가가 전력을 다해 싸우는 전쟁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단순하지만 적국의 약점은 집중적으로 공격하거나 반대로 자국의 약점을 철저하게 방어함으로써 전쟁의 승패는 갈리게 된다. 중국의 옛 병서인 오자병법(吳子兵法)을 보면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오자병법(吳子兵法)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전국7웅 중 하나였던 위나라 태생인 오자(吳子)- 오기장군(吳起將軍)의 글을 모아 놓은 병서다. 그는 당대 최고의 전술가로 명망이 높았던 장수였다.

당대 병서들의 상당부분은 대화체로 쓰여 있다. 그래서 누군가 어떤 사안에 대해 물으면 그에 대한 답을 적은 방식이었다. 당시 작은 소국의 제후였던 무후(武侯)는 오기장군에게 이렇게 묻는다.

“진을 치면 반드시 안정되고, 수비에 들어가면 반드시 견고해서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방법에 대하여 듣고 싶습니다. 願聞陳必定 守必固 戰必勝之道(원문진필정 수필고 전필승지도)”

말 그대로 전쟁의 필살기를 묻는 질문이었다. 요즘에도 이런 류의 질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는 필승의 요건은 시대를 떠나서 늘 유효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오기는 세 가지 조건을 해답으로 내 놓았다. “먼저, 유능한 자를 윗자리에 앉히고, 무능한 자를 아래에 둘 수만 있다면 아군의 진지는 이미 안정된 것이다(君能使賢者居上 不肖者處下 則陳已定矣 군능사형자거상 불초자처하 즉진이정의)”라고 말했다.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답이지만, 정치라는 현실 속에서는 늘 한계로 작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는 비단 과거에서만이 아니라 요즘에도 ‘낙하산 인사’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문제제기 되기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오히려 더 단순하다. 두 번째는 백성들이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하고 나라의 관리들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지방정치를 운영한다면 방어태세는 역시 이미 견고해진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백성들이 모두 주군의 뜻이 옳다는 믿음이 퍼지고 반대로 상대편 나라를 나쁘게 여긴다면 전쟁은 이미 이긴 것이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한 나라의 필살기(必殺技)는 적국에게는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살법(殺法)이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위정자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의 필생기(必生技)여야만 한다. 만약 이러한 조건들이 무너진다면 이는 한 국가를 무너뜨리는 필살기가 될 것이다. 한 개인의 삶에서도 필살기는 단순해야 한다. 화려한 언변으로 포장하거나, 셀 수도 없이 많은 스펙으로 무장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행복을 단순하면서도 가장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 그것이 자신의 필살기이자 필생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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