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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첫 눈을 기다리며

 

벌써 대설이다. 차츰 쌀쌀해지는 날씨와 행보를 맞춰 단풍을 털어낸 나무들이 꾸밈없이 뼈마디를 드러낸다. 이제 더 이상은 지나간 영화를 되돌아보지 않을 결연한 자세로 겨울바람과 마주섰다.

낮게 드리운 하늘이 불러들인 바람에 비스듬히 누운 연기에 취한 까마귀가 추수가 끝난 들판을 선회하고 첫눈이 오려는지 구름은 눈에 익은 능선을 덮고 있다.

아직도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을 들여다보면 세상의 모든 처음이란 어떤 힘을 가졌기에 사람의 마음에 물결을 일으키게 하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시도가 두려운 나이가 되어서도 결코 늙지 않을 첫사랑이 그렇고, 해산을 하고 갓난아기와의 첫 눈맞춤은 살아가는 동안 그 어떤 유혹에도 오로지 빛을 향하여 나아가리라는 다짐을 하기에 충분했다.

새 학기가 되어 새로 공책에 글씨를 쓰는 순간, 수틀을 메우고 색실을 꿰어 처음 자수를 시작하는 순간에는 내 심장소리가 들렸다.

이처럼 처음이라는 순간은 우리를 별다른 이유 없이 설레게 하고 들뜨게 한다.

생각해 보니 작년에는 자고 일어나니 먼 산에 눈이 쌓여 멀리서 바라보며 없는 솜씨로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 첫눈 소식을 전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제나 저제나 하며 하늘만 바라보고 지나갔다.

그렇게 기다리던 올 첫눈은 정말 싱겁게 지나갔다. 작년보다 하루 늦은 빼빼로데이가 아닌 가래떡데이 다음날 가로등 주변으로 모여드는 하루살이처럼 아주 잠시 흩날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다음날 첫눈 이야기를 하니 못 본 사람들이 많아 그냥 샘플이라고 해서 웃으며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소설을 지나 수능한파가 한바탕 몰아치고 난 후 푸근한 날씨가 이어져 아직은 가을이거니 하며 낙숫물 소리를 끝으로 11월을 떠나보냈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12월은 첫날부터 폭풍한설이 몰아쳤다.

하늘 가득 배꽃처럼 날아 내리는 눈송이가 아니라 매서운 바람이 휘모리장단을 치며 눈을 뿌리는 날씨는 이팔청춘들도 추억 만들기를 위한 약속을 잡고 싶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국 두 번째 내린 눈도 첫눈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벽 하나 사이로 이웃한 집에서 공사를 하는 소리는 처음의 사나흘이면 너끈하다는 얘기와는 달리 전기톱에 판넬 떨어뜨리는 소리와 용접 불티에 온갖 장비를 사용하는 데서 오는 소음과 낯선 사람들의 기웃거림과 거칠고 험한 말투 등 도무지 어수선하고 칙칙한 풍경을 연출한다.

세상 뭐 있겠느냐며 좋게 살자며 이럴 땐 그냥 알콜의 도움으로 일찍 자는 게 최고라며 권하는 막걸리 몇 잔에 화장실 들락거리며 잠을 설치느라 한밤에 내리는 눈이 제법 그럴싸해서 아침에 맞이할 설경을 기대하며 겨우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 두터운 옷차림에 장갑을 끼고 나선 길은 겨우 발자국이 찍히기는 했으나 해가 퍼지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올 들어 세 번째 내린 눈도 첫눈으로는 자격미달이라는 얘기다.

그럼 언제쯤 제대로 된 첫눈이 내릴 지 누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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