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역시 ‘희망’은 ‘바람’으로 끝났다. 사자성어 얘기다. 2014년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는 ‘전미개오(轉迷開悟)’였다. 전미개오는 어지러운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의 깨달음에 이르는 불교용어다. 청마해에 속임과 거짓됨에서 벗어나 세상을 밝게 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연말, 한해를 되돌아보는 평가는‘지록위마(指鹿爲馬)’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처럼 1년동안 거짓된 행동이 우리사회에 횡횡했다고 해서 선정됐다.
지난 2001년부터 연말만 되면, 대학교수들은 새해의 희망을 함축적으로 담은 사자성어를 발표해 왔다. 이 풍속도는 교수신문이 국내 일간지에 칼럼을 쓰는 일정 수의 교수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후 투표로 순위를 결정, 발표하면서 등장했다.
그리고 2006년부터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 발표 직전, 한 해를 뒤돌아보는 ‘올해의 사자성어’도 함께 선정·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매년 희망은 바람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연초와 상반된 사자성어가 그해 연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생각한대로 안 되는 것이 세상살이인것처럼 사자성어의 풀어 논 뜻이 올해처럼 어느 한해 희망대로 맞아떨어진 해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1년만 하더라도 연초 사자성어는 민귀군경(民貴君輕), 즉 백성은 소중하고 임금의 권세는 짧고 미약하니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새해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그해 연말 선정된 사자성어는 엄이도종(俺耳盜鐘·귀를 막고 종을 훔침, 잘못을 하고도 다른 사람의 비판,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음)이었다.
그런가 하면 2012년 새해 사자성어는 잘못된 것은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다. 거짓을 분쇄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했지만 연말에 돌아온 사자성어는 거세개탁(擧世皆濁·온 세상이 다 혼탁함)이었다. 정권 말기에 온갖 부정부패, 비리가 드러나기 시작, 온 나라가 진흙탕물 같다는 게 선정이유였다. 또 2013년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는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의미의 제구포신(除舊布新)이었다. 제18대 대통령이 취임하고,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에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희망사항’이 돼 버렸다. 1년동안의 평가가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의 ‘도행역시(倒行逆施)였기 때문이다. 올해의 교수들이 선정하는 을미년(乙未年) 희망의 사자성어가 궁금하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