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깨달음을 특별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지고한 상태로 상상한다. 그러나 중국 선사(禪師)들은 깨달음에 대한 우리의 이러한 편견을 깨부순다.
한 예로 “부처는 똥 막대기!”라는 운문선사의 ‘간시궐’(乾屎闕) 화두는 부처를 신성시하고 깨달음을 초월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어리석은 범부들의 알음알이(분별심)를 공격하는 말로 참선이 특별한 것처럼 오해돼 왔던 불교와 선문답의 세계에 대한 왜곡과 역사적 오류를 지적한다.
‘선문답의 세계와 깨달음’(부제: 화두, 모름에 대하여 분석하다)에서 저자 자명 스님은 이런 선문답의 특수성을 풀어헤치고, 불법(佛法)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법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신비적인 측면만 강조됐던 선문답을 파헤쳤다.
선문답의 원리를 분석함으로써 선문답이 우리의 평범한 심리적 구조를 분석한 것 외에 특별한 것이 아님을 밝힘과 동시에 깨달음을 특별한 것으로 오해한 선사들에 대한 파격적인 비판을 시도했다.
저자에 따르면 깨달음의 세계는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일상적 경험과 관계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지식과 경험이 아닌 기존의 자기 생각을 내려놓음으로써 현실을 다르게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인 것이다.
산 정상에 오르는 데서 등산이 끝나는 게 아니고 그 지점부터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것처럼, 깨달음은 다른 삶, 다른 생각의 길을 여는 것을 이른다.
책은 총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선문답의 원리를 분석함으로써 간화에 필요한 의정(疑情)의 발생 기제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수행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살펴본다.
여기서는 선문답의 원리에 의거해 누구에게나 쉽게 의정을 만들어 주는 것이 현대적 의미의 선문답의 적용이며 대중적 수행법의 기초가 됨을 보였다.
의정이란 문제의식을 말한다. 선문답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바로 이런 의정(문제의식)을 일으키는 것이다.
제2부에서는 간화선의 핵심주제들을 살핀다. 우선 화두는 모름(不會)에 대해 분석함으로써 알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은 화두를 통한 논리적 충돌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됨을 보이고자 한다.
또 초기선에서의 알음알이(분별심)을 분석한다. 여기서 알음알이란 ‘안다(知)’는 것을 명사적으로 쓴 것으로 앎처럼 주관적으로 아는 면을 강조하는 것보다 아는 대상으로써 객체적인 면을 강조해 쓴 말이다.
마지막으로 간화병(看話病)의 분석을 통해 바른 화두의 참구법(參究法)을 연구한다.
지해(知解)에서 비롯되는 간화병, 무문관의 선잠(禪箴)은 우리 생각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마음인 치구심(馳求心)이나 알음알이에 빠져서 이분법적인 양단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