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헬싱키대학의 한국인 교수가 현지 초등학교 교사 비르바 라이사넨을 데리고 찾아왔다. 한국어를 배운다는 그 교사와 몇 가지 얘기를 나눴다.
새해에 필요한 것들을 요청하고 왔다기에 그 성격을 궁금해 했더니 새 학년도 교육을 위해 꼭 들어주어야 할 것들이고, 그 요청을 모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교장이라고 했다. 글쎄, 교장이라면 그렇게 ‘사소한 일’ 외에도 아주 중요한 일을 많이 하고 있지 않겠는가.
상급 관청으로부터 새해의 주요 목표를 통보받은 후에 새 학년도 목표를 세우고, 어떤 지시나 명령을 해야 할지 구상하고, 교직원들을 어떻게 조직해야 권위가 확립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지 결단을 내리는 것이 교장의 주요 업무가 아닐까, 아니 그런 것쯤은 교감에게 위임하고 한 발 물러서서 지켜보는 것이 大교장이 보여줄 수 있는 느긋함이 아닐까?
어쭙잖은 경험에 따른 케케묵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이번엔 등하교 이야기가 나왔다. 핀란드에서는 교사가 정하는 수업내용과 시간 운영 계획에 따라 등하교 시각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우리도 따지고 보면 교사가 정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운동회 날은 특별한 날이니까 몇 시까지, 소풍가는 날은 조금 늦게, 현장견학이나 수학여행 가는 날은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닦달하여 좀 일찍 출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그 교사도 “음, 음….” 하며 구체적인 예를 열거하고 있었다. “학습내용, 학습활동에 따라서 8시 등교 오후 3시 하교, 9시 등교 오후 4시 하교, 10시 등교 오후 1시 하교, 오후 1시 등교 오후 5시 하교…….”
공교롭게도 그 교사를 만난 다음날 신문에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조사 결과를 인용한 등교 시각 관련 기사가 크게 실렸다. “학생 73%가 반대하는 9시 등교 서울도 강행할까?”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학생들의 건강권과 수면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도입한 ‘9시 등교제’를 서울에서도 시행하려고 하자 논란이 일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교사(79%), 학부모들(82%)의 반대는 학생들보다 더 심하다는 것은 강조하면서도 정작 그 이유에 중점을 둔 기사는 찾기 어려웠다. 한국교총에서는 “9시 등교를 하면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이 줄어들고, 하교 시간이 늦어져 학원 시간까지 줄줄이 늦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학생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장 심하게 반대하는 층은 일찍 출근하는 맞벌이 부부라는 것만 나타나 있을 뿐 교사들의 생각은 보이지도 않았다.
결정 방법에서도 그렇다. 지난해 11월, 조희연 교육감은 “학교별로 학생·교사·학부모가 참여하는 대토론회를 거쳐 올 신학기 도입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라”고 밝힌 바 있으나, 신문을 보면 각 초·중·고교별로 조만간 운영위원회를 열어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수업에 관한 일이면 당연히 누가, 왜, 어떻게 그 결정에 참여해야 하는지, ‘수업방법’ 결정에 관한 분명한 관점과 논의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당연한 그 논리를 외면하거나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상대편 주장 혹은 결정에 대해 좋은 점을 찾기보다는 “저렇게 나오면 어떤 점을 비판, 공격해야 할까?” 습관적으로 그 생각부터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면서도 “핀란드식으로 하면 큰일난다!”는 비판을 이미 준비해 놓았을 것이 분명하다.
두 가지를 털어놓아야 하겠다. 이런 식으로 하면 우리는 언제 산적한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있을까 싶은 아득함을 느끼게 되고, 핀란드에서는 모든 정책들을 상식·보편적 수준에서 논의, 결정함으로써 수용하기가 순조로운데 비해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등교 시각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그것을 무슨 법(法)을 정하듯 어마어마하게 다루어도 결과에 석연치 않다고 하는 사람이 많고, 핀란드에서는 비르바 라이사넨이라는 일개 교사도 전문성, 자율성, 책무성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결정하면 그만인 수업 방법(方法)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