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전세계 영화 흥행 순위 1위 영화는 무얼까?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아바타(Avatar, 2009)다. 이 영화를 보면서 특히 눈길을 끈 건 외계 행성의 생명체들이 꼬리 끝의 신경줄기를 통해 같은 종은 물론이고 다른 종의 생명체들과 교감한다는 설정이었다.
한 생물체가 다른 생물체의 고통과 기쁨, 슬픔과 괴로움 등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생생히 체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행히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기껏해야 우리는 타인-다른 종(種)은 고사하고-의 심정과 처지를 헤아리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써야 겨우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도 어렴풋이.
나는 지금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 가운데 으뜸이 공감능력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그 극명한 증거가 세월호 사태에 대한 일부 시민들의 반응이다. 세월호 사망자들에 대한 모욕과 혐오, 유가족들을 향한 공격과 증오와 저주와 폄하, 일베들의 폭식투쟁으로 상징되는 패륜과 인면수심의 일상화 등의 사회적 질병들을 단순히 진영논리나 정치적 이해득실로 환원시키기에는 모자람이 있다.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양산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교육(가정, 학교, 교회, 언론 등에서 포괄적으로 이뤄지는 교육)은 완전히 파산했다. 일찍이 맹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맹자의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에는 인간이 아닌 비(非)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 중이다. 공감능력이 없는 시민들이 많은 사회는 사멸할 수밖에 없고 사멸해야 옳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공감능력을 회복한 시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세월호 사태가 공감능력의 복원을 위한 사회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야 하는 건 그런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