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맞이하게 되는 손님 중 아마도 가장 반갑지 않은 손님이 오래 전 빌렸던 돈을 갚으라며 찾아오는 사람일 것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저승사자만큼이나 반갑지 않은 존재가 자신도 잊고 있었던 오래된 채무를 변제하라고 찾아 온 채무자일지 모른다. 더군다나 그 채무자가 태평양 건너에서까지 왔다고 생각해 보라. 시쳇말로 우선 식겁한 기분이 먼저 들 것이다.
미국에서 유학, 취업, 이민 또는 여러 이유로 생활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에게 요즈음 부쩍 미국에서 사용한 크레딧 카드때문에 빚을 갚으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물론 미국에서 태평양을 건너 직접 날아 온 채권자가 아니다. 어찌어찌 하여 원래 크레딧 카드를 발급한 금융기관으로부터 채권을 양도 받았다고 하며, 그야말로 전혀 인연이 없었던 회사(사람)가 ‘내용증명’이라는 것을 우선 쓱 보내오는 것이다.
타국 생활에서 어렵게 지내다 보니 미쳐 크레딧 카드로 사용한 것을 지불하지 못하고 왔는데, 그리고 사실은 하도 오래된 일이라 그 보내온 내용증명을 보고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일인데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물론 내가 진 빚은 갚아야 함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전에 몇 가지 확인해야 함 또한 옳다. 우선 그 빚이 나의 것이 맞는지, 그리고 법적으로 갚지 않아도 되는 조건(채무의 소멸 시효 완성 등)이 완성된 것은 아닌지.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채무 변제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과연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변제를 요구하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정당한 권리 없이 채무 변제를 요구하는 사람에게 내용증명을 하나 보내왔다고 요구하는 대로 돈을 주어버리면, 나중에 원채권인 크레딧 카드 발급 은행이나 그 은행으로부터 법적으로 정당하게 채무를 양도받은 사람이 나타나서 채무 변제를 요구할 경우 그 때는 꼼짝 없이 채무를 변제해야 한다. 두 번 돈을 갚는 꼴이 되는 것이다. 내가 빚을 졌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 여러 사람이 다 채무 변제를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크레딧 카드 사용으로 발생한 채권을 미국 은행들이 Collection Agency라고 하는 추심업체에 판매, 양도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크레딧 카드 빚의 원채권자가 보통 은행인 경우가 많은데, 해결되지 않은 채권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은행의 유동성에 문제가 발생하고 금융기관 운영에 관한 국제규정에 맞지 않게 되는 등 은행 경영상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오래된, 그리고 금액이 크지 않은 크레딧 카드 채권 같은 것을 추심업체에 판매, 양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 내용증명을 보낸 회사(사람)가 정당한 채무 변제 권리를 가진 것인지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원채권자인 은행 말고 정당하게 권한을 부여 받은 채권추심업체에서 변제 요구가 언젠가 올 수 있기 때문에 정당한 권한이 없는 채권추심업자가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해서 변제 행위를 하게 되면 손해가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채무자라고 해서 아무런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채무자의 의무는 정당한 채권자에게만 돈을 갚을 의무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