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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4월 보내기

 

여기저기 꽃소식이 줄을 잇고 있는데 워낙 추운 지역으로 소문난 우리 동네는 깜깜하다. 오히려 꽃샘추위에 부풀어 오른 꽃망울이 걱정이 된다. 괜히 섣부르게 피었다 얼어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에는 목련이 피고 이삼일도 못 가서 진눈깨비가 퍼붓고 꽃들은 전부 흙탕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나무에 달린 채로 죽어버리는 참담한 봄이었던 기억이 있다.

작년에는 온 나라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슬픔에서 헤어나기 힘든 시간이었고 지금도 그 가족들이나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결코 지나간 일이 아니다. 그들의 달력은 영원히 4월 16일에서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 아픔을 어루만지고 일으켜 세워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 사회를 혼란으로 몰고 가는 몰염치를 보여주는 행태에 염증이 나 시선을 돌리고자 의식적으로 꽃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나에게 봄은 언제나 게으름을 부리며 느린 걸음으로 온다. 이웃집 지붕위로 목련이 다시 피고 진달래가 피었다는 소리도 들리고 들에 냉이꽃이 핀다. 큰 길에 플래카드가 바람을 맞고 섰다. 주민자치회와 몇몇 단체가 주축이 되어 벚꽃길 걷기 대회를 한다는 소식에 아침 이른 시간이라 참가를 했다. 며칠 전부터 잦았던 비에 물길을 머금은 황톳길은 밀가루 반죽처럼 쫀득거리고 바람이 불면 눈처럼 꽃잎을 하나씩 뿌려준다. 가까운 길을 몇 해를 걸려 찾아오니 물길도 새롭고 길섶에 돋아난 풀 한 포기도 새롭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던 길이 이제는 벼르고 별러야 한 번 오는 곳이 되었다. 아마도 전처럼 쉽게 찾을 수 있었으면 이런 감동은 느끼지 못했으리라. 시간에 쫓기며 사는 생활이 가끔은 육체적인 과로 이상 나를 힘들게 했다.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어쩔 수 없이 멀어지는 듯한 소외감과 내가 하고자 하는 어떤 것도 시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일상 속에 나를 함몰시키곤 했다.

어느 신부님께서 강의 중에 질문을 던지신다. 인간이 자살을 생각할 때가 언제인가? 모두들 경제파탄이나 불치병이나 시한부 선고에서 연인들의 결별 가정해체 등등 저마다의 사유를 들었다. 잠시 어수선한 분위기가 지나가고 들은 답변은 희망 끈을 영영 놓쳤을 때 사람은 죽음의 유혹을 가장 강하게 느낀다는 말씀이었다. 언제나 봄이면 들판을 바라보며 아지랑이가 피어나기를 기다리고 눈이 녹기도 전에 말라죽은 묵은 풀을 들추며 초록빛 부활을 꿈꾸었다.

요즘 들어 잔인한 4월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작년 4월이 그랬고 올 해도 온 나라를 뒤흔들기에 충분한 정치권 실세들의 뇌물사태를 직면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신뢰를 잃은 정치권이라 할지라도 국민들에게 더 이상의 실망을 주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마음을 무디게 가져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 않는 계절을 보면서 우리가 먼저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품는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인간다움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삶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모래별꽃처럼 작고 화려하지 않아도 나만의 빛깔과 향기를 소중히 가꾸어가려면 가끔은 비바람도 꽃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봄날의 하루라고 받아들이면 잔인한 4월도 어느덧 지나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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