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장이 사는 법
/이향지
이 연장은 조금 안다
흙을 판다
흙을 덮는다
나는 파지 팔지 않는다
나는 흙이 조금 묻어서 돌아온다
나는 굳이 흙을 씻지 않는다
물이 마르면 흙은 알아서 떨어져 간다
흙을 파고 덮는 짧은 사이에 씨앗을 넣었다
흙은 알아서 길게 먹이고 재우고 키워 준다
씨앗은 알아서 일찍 죽거나 서리 내릴 때까지 산다
이 연장은 죽은 것을 캐거나 산 것을 옮길 때도 사용된다
흙은 알아서 가슴을 뜯어 주거나 엉덩이를 들어 준다
흙은 알아서 남몰래 삭이거나 뼈를 남겨 준다
흙이 문을 닫고 겨울로 떠나면 이 연장도 알아서 쉰다
이 연장의 끝은 놀고 있을 때 빛이 죽는다
― 이향지시집 〈햇살 통조림/천년의 시작〉
이 연장은 정말 조금만 알까? 무엇을, 어떤 것을, 우리가 흙에 대해 아는 것처럼, 흙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그러나 파지 팔지 않는 연장이다. 모든 것을 사고파는 것에만 열중하는 세상에서 이 연장은 파지 팔지 않는다. 고집이다. 고귀함이다. 이 조금은 너무 깊은 조금이다. 흙에 대해서도 조금 묻어서 돌아온다. 깊이 묻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 연장은 죽은 것과 산 것 모두에 관여한다. 그래서 흙이 문을 닫고 겨울로 떠나면 알아서 쉬기로 한다. 마지막 행은 애써 읽지 않기로 한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