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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인간애로 점철된 피카소의 천재성

 

피카소의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사고 후 1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있는 가운데 작은 미술 꼭지가 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피카소만한 소재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실존적인 인간의 아픔을 그토록 극적으로 그려낸 화가이니 말이다. 작은 파편들로 조각난 세계는 고통의 기억과 트라우마로 찢겨진 인간의 깊은 내면을 대변해 주고 있으며, 그 속에 살고 있는 포효하는 짐승, 원시적인 두려운 존재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수많은 위대한 화가들이 인간의 고통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지만 단연 피카소가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열었던 현대미술의 지평이 과거와는 절연된 전혀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인간의 참혹한 현실을 그린 그의 작품들이 전 세계에 일으켰던 사회적 반향 때문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게르니카〉가 대표적이다. 1937년 독재자 프랑코에 의해 끔찍하게 폭격당한 스페인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분노에 차서 완성한 작품이다. 가로 8미터, 세로 3.5미터의 대형 캔버스에는 포격으로 무너지는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스러지며 울부짖는 현실이 참혹하게 그려졌다. 완성된 작품은 이듬해 파리의 만국박람회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되었고, 반전과 평화의 구호에 확성기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작품이 있는데, 1951년 우리나라의 현실을 그렸던 〈한국에서의 학살〉이다. 아이들과 여자들, 임신한 여인이 총칼을 든 군인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외국의 유명한 작가의 손에 우리의 현실이 그려졌다는 사실을 알고, 국내의 예술가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평론가 김병기는 피카소의 정치적 입장과 우리의 입장은 엄연히 다르다고 서신을 통해 파리의 피카소에게 피력했다. (답장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반면 고국의 비극적인 현실을 이토록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에 고무된 작가들은 서양화의 조형예술을 연구하며 그것을 적용해 우리의 비참한 상황을 그리기도 하였다.

전 세계가 이데올로기의 열병을 앓았던 시대였으며 여러가지 패러다임들이 한 번에 들끓어 올랐던 시대였다. 논리의 완성을 위한 무수한 말들이 쏟아졌으며, 그것들은 인간성 위에 군림했다. 〈한국에서의 학살〉이 그려졌던 당시에도 작품에서 드러난 짓밟힌 인간성보다는 피카소의 정치적인 정체성이 더 큰 화두가 됐었다. 작품의 배경이었던 우리나라에서는 피카소의 정치적인 색깔을 두고 논란이 있었고 한때 국내 언론에서는 그를 불경스러운 작가로 여기기도 했다. 외국의 경우도 사정이 비슷해서, 미국에서는 미군을 부정적으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공산권에서는 적의 실체를 분명히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공격했다. 말이 너무 많아지면 그 말들은 애초의 시발점이었던 고통 받은 이들을 곧 떠나버리고, 도리어 그들의 가슴에 비수로 꽂히며 돌아오게 된다.

사실 피카소가 어떤 정치적인 입장을 취하고 무슨 생각으로 작품 활동을 했는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피카소의 작품연대가 11개로 갈라진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그는 왕성하게 당대의 패러다임들을 섭렵하고 또 소화했던 작가였기 때문이다. 천재 화가 피카소 앞에 ‘영원한 젊음의 화신’이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붙은 이유는 어느 한 지점에 안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시도했던 피카소의 전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피카소가 지닌 진정한 천재성은 참혹한 시대에 온몸이 전적으로 인간애에 격하게 자동 반사됐던 그 특유의 번뜩임에 있었다. 마지막은 샤이먼 샤마의 〈파워 오브 아트〉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게르니카〉는 파괴력을 지닌 악마들이 활보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우리의 안일함 그리고 나태함과 싸운다. 〈게르니카〉는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름이 찬 상처를 헤집고 우리의 잠을 설치게 하려고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종기의 고름을 뽑아낸 피카소, 예술 그리고 인간성은 결국 승리하게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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