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본질은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굳이 고전 속에 들어 있는 좋은 문장을 들먹이며, ‘누구는 이런 말을 했네’ 혹은 ‘그의 철학적 바탕은 무엇이네’를 말할 것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 의문을 깊이 있게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인문학은 ‘사색’의 학문이다. 그 어떤 것에 대하여 한번 더 생각하고 이치를 따져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수 많은 길을 만들어가는 행위학문이다. 똑같은 상황이나 문제를 직면했을지라도, 그 생각하는 힘의 차이로 인해 결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지게 된다.
그 생각하는 힘의 중심에는 ‘나’라는 존재가 있다. 그러나 그 생각하는 힘이 전달되는 것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바로 공동체 속에 존재하는 나를 제대로 이해할 때 인문학은 보편성을 갖추게 된다. 나와는 다른 사람 즉,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부터 인문학적 발상은 힘을 얻게 것이다.
정치 또한 상대를 두고 하는 것이다. 설사 자신이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생각과 이념 가치가 다르더라도 논리와 정책 그리고 그것의 실행을 통해 인정받으려는 노력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추악한 정치논리와 대중선동을 통해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완전히 생매장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작금의 진보세력에 대한 빨간 색깔 덧씌우기가 대표적이다. 세상은 진보와 보수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굴러가야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만약 일방적으로 한쪽을 거세한다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린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말처럼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의 방식을 고민하는 방식으로 정치는 진화되어야 한다.
무예에서도 상대와 겨루는 교전의 방식을 사고할 때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 상대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되야 한다. 심지어 상대는 무조건 나보다 실력이 위다라고 생각하고 풀어가야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한판을 풀어갈 수 있다. 만약 상대가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하는 순간 무너진다. 이는 일대일의 교전뿐만 아니라 수천 수만의 군사들이 동시에 전투를 벌이는 거대 전투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만약 장수가 상대를 우습게 알 경우 그 전쟁은 보나마나 백전백패의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손자병법(孫子兵法) 모공편(謀攻篇)』에 나오는 말로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처럼 자신과 상대방의 상황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상대를 인정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 위태로움을 줄일 수 있는 최고의 방안이라는 것이다. 현재는 이 말이 잘못 와전되어 ‘지피지기 백전불패’라 하여 결코 지지 않는다로 변하거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단계까지 발전하기까지 했다. 모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할 부분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이라는 초등 교육용 한문서적이 있다.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 이란’ 뜻으로 사람들이 살아 가는데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격언들과 고전에서 귀감이 될 만한 문구들을 모아 놓은 기초 한문교재에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나를 귀하게 여김으로써 남을 천하게 여기지 말고(勿以貴己而賤人), 스스로 크게 여김으로써 남의 작음을 업신여기지 말며(勿以自大而蔑小), 용맹을 믿음으로써 적을 가볍게 보지 말라(勿異特勇輕敵)’고 하였다.
『명심보감』은 〈천자문〉과 〈사자소학〉과 더불어 어린이용 기초 한문교재로 활용된 서적이다. 어린이들에게도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라고 가르치는 것을 오히려 성인이 되었을 때도 까먹는 경우가 많다. 세상만사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로지 상대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안정화를 이루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찾는 방법이다. 상대를 업신여기고, 낮게 깔아 보면 언젠가는 자신이 그 처지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된다는 말처럼 세상사 모든 것이 돌고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