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대 왕 중 정조만큼 기록을 많이 남긴 왕은 없다. 특히 일기(日記)에 관한한 독보적이다. 대표적인 게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다. 정조는 1759년 왕세손으로 책봉된 뒤 경희궁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리고 14년을 그 곳에서 생활했다. 당시 정조가 머물던 건물의 2층을 주합루(宙合樓), 1층을 존현각이라 불렀는데 정조가 8세 때인 1760년부터 이곳에서 쓴 일기다.
지금도 일기란 그날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반성하고자 하는 뜻에서 쓰는 것이지만 큰일이 없으면 쓰지 않기도 하고 쓰다가 중도에 포기도 한다. 그러나 정조는 안 그랬다.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록을 남겼다. 그것도 자신의 사소한 것부터 신상의 위협을 받는다는 내용까지 다양하다.
정조는 왕에 오른 후에도 일기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신하들에게는 이런 글도 남겼다. ‘나는 일기를 쓰는 것이 일찍이 하나의 벽(癖)이 됐다. 아무리 바쁘고 번거로운 일이 있을 때라도 반드시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록해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핀다는 뜻을 담았으니 이는 성찰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심력을 살펴보려는 것이어서 지금까지 그만두지 않고 있다.’
정조는 한 발 더 나아가 그 일기를 ‘승정원일기’와 구별되는 공적인 기록으로 후대에 남기도록 했다.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일성록(日省錄)’이다. 그리고 이어 왕의 일기는 물론 규장각 도서, 국정에 관한 제반 사항을 기록한 국가의 공식 기록물이 됐다. 다시 말해 왕의 입장에서 편찬한 일기 형식의 기록물이 왕의 재가를 받는 공식적인 국정 일기로 전환된 것이다.
일성록은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 못지않다는 방대함과 이들 기록에 없는 희귀한 내용을 다수 담고 있어 조선 후기사의 보고(寶庫)로 평가된다. 2011년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됐다. 정조 때 시작된 일성록에는 순종에 이르기까지 151년의 기록이 2천328책에 적혀 있다. 이 중 정조대는 전체의 3분의 1가량인 645책인데 이중 한국고전번역원의 16년 노력 끝에 이번에 185권을 완역했다고 한다. 벌써부터 내년 발간이 기대된다. /정준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