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에게는 삶 전체가 놀이다. 놀이를 통해서 모든 것을 배우고 관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아이들이 뛰어 노는 놀이터는 그 생김새에 따라 아이들이 배움을 얻고 관계를 형성해 가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놀이터에 예술적인 감성을 담아낸다면 그곳에서 노는 아이들 역시 예술적 감성을 키울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놀이터가 조형미술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여 단지 놀이기구로서의 최소한의 기능과 안전만을 고려한 채 어느 곳에 가나 똑같은 형태로 꾸며놓기가 일쑤이지만, 놀이터는 미술, 건축, 환경, 과학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작품이 될 수 있으며 근사하게 디자인만 된다면 랜드마크로서의 명성을 얻을 수도 있다.
외국의 놀이터 디자인 사례들을 살펴보면, 놀이터가 얼마나 근사하고 멋질 수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스페인의 알코벤다스 시의 갈라시아 공원에는 거대한 개미총 모양의 놀이터가 조성되어 있다. 개미들이 만든 길처럼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동글동글하고 알록달록한 섹션들이 포도송이처럼 배치되어 있다. 그중 어떤 섹션들은 개미총 마냥 나지막한 잔디 언덕으로 되어 되어있고, 나머지 섹션들에는 놀이기구들이 특성별로 분류되어 배치되어 있다. 큰 아이들이 매달리며 놀 수 있는 2층짜리 건물높이의 정글짐이 있는가 하면, 3세 아동들도 타고 놀 수 있는 버섯이나 조약돌 모양의 나지막한 놀이기구도 있다. 여러 연령의 아이들이 모두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놀이기구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놀이기구 별로 동선과 영역을 분리해두었기 때문에 큰 아이와 작은 아이들이 엉켜서 다칠 염려도 없다.
영국의 런던 해크니 주택단지에 설치된 이블린 코트 놀이터는 가파른 언덕에 조성된 놀이터이다. 놀이터라 하면 평평한 네모난 부지의 모양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부드럽고 완만한 높낮이가 있는 굴곡진 땅에서 노는 것이 아이들에겐 더 재미있다. 이블린 코트 놀이터는 본래 주택단지 초입 울타리가 있었던 언덕을 놀이터로 개조한 곳으로 부지의 경사를 그대로 이용해 미끄럼틀, 정글짐, 동굴 등을 설치하였다. 놀이기구의 형태는 주변의 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구불구불한 파도 형태의 선으로 아름답게 디자인되었고 녹지와 놀이기구가 한데 섞여있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스너그 키트라는 조립식 놀이기구 세트가 있어서 영국 전 지역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스너그 키트는 아이들이 자신이 가지고 놀 기구를 직접 조립할 수 있는 일종의 블록 세트로서, 굳이 일정한 부지를 차지하지 않고서도 유동적로 존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지면의 한계로 몇 가지 사례밖에 들지 못했지만,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놀이터가 세계에 수도 없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특정한 테마를 지닌, 이를테면 자연, 책, 예술 등을 테마로 한 놀이터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놀이터가 천편일률적로 디자인되어 있는데, 이는 놀이터 디자인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까닭이다.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으로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도 모자라 놀이터마저 똑같은 형태로 만들어 버린 것은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충분히 미안해야할 일이다.
사교육비 지출이 이토록 높은 나라에서 진정 아이들을 위한 공간인 놀이터에는 너무 인색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게다가 3~5세의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들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뛰어놀게 하기 위해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며 키즈까페를 방문해야하는 현실이다.
놀이터를 조성하고 설계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라면 세계에 이토록 진기한 놀이터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모든 연령과 형편의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다양한 정서를 계발할 수 있도록 조금 더 고민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놀이터가 곧 미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