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열의 마을
/허만하
마을에는 인기척이 없었고 소리도 없었다. 색채도 없었다.
개도 없었고 바람도 없었다.
오직 눈부신 빛의 흡수와 짙은 그 음영만이 흩어져 있는 빈 마을을,
이따금 출토하는 목간(木簡)의 잔열처럼 건조한 마을을
나는 황폐한 게릴라처럼 들어서고 있었다.
누가 없소! 누가 없소! 절망과 같은 고요를 향하여 거의 갈증처럼 고함을 질렀으나……
나의 인후는 토담처럼 부스러질 따름이었다.
그때 내가 잡고 있었던 것은 분명히 한 자루 총의 싸늘한 무게였지만
나의 탄환은 피로하였다.
나의 질문은 납의 침묵처럼 피로하였다
누가 없소! 누가 없소!
아, 누란, 스스로를 모래에 묻은 실크 로드의 누란과 같은.
-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1999년
마치 죽은 자들의 세계에 들어선 망자처럼,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살아있는 자들을 목청껏 부르다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의 심정이 저럴까. 시간의 전갈들이 다 갉아먹어버린 생의 끝에 다다른 자의 절규가 들린다. 모래 속에서 목조가옥의 흔적과, 부서진 가구에 남은 장식무늬 조각과 배(舟)모양 목관에 담긴 미라와 지난날의 관습이 적힌 목간(木簡)이 출토된 곳. 누란, 고고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누란 주변에는 약 1만 년 전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을 것이란다. 그 긴 역사의 잔해 앞에서 느끼는 생의 허망함처럼, 아무도 없는 세계에 들어선 망자의 기분이 저럴 것이다. /신명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