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현대미술 작가 마크 로스코의 전시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처음 전시를 열었을 때는 작가를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만 전시장을 방문했지만 점차 언론과 입소문을 타며 관람객이 늘더니 개장한지 56일 만에 12만명이라는 입장객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미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현대미술 작품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는 것에 매우 고무적이다.
많은 언론들은 마크 로스코라는 사람이 갑자기 주목받은 이유에 대해서 고심하고 있다. 아무런 형태를 지니지 않은 색면화가 무슨 매력이 있기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일부는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예술가’를 전면에 내세운 마케팅 전략, 인기 철학자 강신주가 집필한 도록, 연극 레드의 대사를 낭독하는 배우 유지태의 도슨트 해설, 전시장을 방문한 저명인사들의 후문 등에 인기의 이유를 들고 있다. 반면 이러한 전략들이 성공적인 마케팅을 이끌어 냈다는데 동의를 하면서도 작품이 지닌 본연의 의미를 가려서 오히려 작품을 관람하는데 방해가 됐다는 의견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한 비판들에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전시기획의 여건이 만만치 않은 요즘,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의 작품들을 전시하고자 도전했던 기획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러한 마케팅 전략 외에, 작품 본연의 차원에서 그렇게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의 특징을 꼽으라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 그 부분에 가서는 많은 사람들이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주는 감동은 ‘말로 어떻게 설명하기가 곤란하다’고 말하곤 한다. 잭슨 폴록, 바넷 뉴먼 등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이 활동의 정점을 찍었던 그때, 저명한 비평가 그린 버그는 형태를 벗어던진 이들의 작품이 평면 회화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한다며 이들이 ‘숭고미’를 담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그의 비평은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라는 흐름과 작가군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사실 마크 로스코는 그린 버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남긴 자료들과 녹취들을 살펴보면 그가 작품을 자신의 뼈와 살과도 같다고 여겼으며, 관람자의 신체가 작품에 반응하기를 기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을 한번 보기 시작하면 쉽게 눈을 떼지 못하겠는 것, 작품마다 지닌 저마다의 색깔이 각각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의 작품이 관람자의 몸에 화학반응을 불러일으켜서이다. 어떠한 작품들은 이처럼 직접적이고 특별한 경험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작가들이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심혈, 즉 심장의 피, 온 마음과 힘을 기울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로스코는 자신이 됐다고 생각이 될 때까지 투명한 물감을 한없이 덧칠하였을 뿐만 아니라 물감을 칠하기 전 수많은 시간동안 명상을 했다. 작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가며 창작에 몰두했을 때 그 에너지는 작품에 오롯이 담긴다. 작가의 후일담이나 작품의 스케일이나 작품에 들어간 재료들과 제작기간이 아닌 온전히 회화적인 이미지로서 마크 로스코는 그러한 감동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것은 회화 장르에 몸담고 있는 작가가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관객들은 로스코의 말마따나 작품을 보면서 성장하게 되고, 작품 역시 고정되어 있지 않은 채 관람자에 의해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로스코의 작품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 보면 작품이 어떠한 경계에 의해 고정되지 않고 대기의 움직임 같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포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관람자의 신체는 그것에 조응한다. 이점은 마크 로스코의 작품에 대하여 논할 때 복잡한 인간사와 구체적인 감각을 걷어 내버리고서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진정성’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형태가 왜곡되거나 뜻을 알아볼 수 없어 난해한 현대미술 작품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작품을 바라보자. 그 안에서 희미하게나마 어떠한 진정성을 포착할 수 있다면 그 작품들은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